보통 예수를 믿고 주님이 내안에 오심을 인식하는 거듭난 영적생활을 할때, 우리의 죽을 육체에 주님의 생명이 역사하신다.
예수님은 사람들과 더불어 사셨지만 하나님과 늘 온전한 관계를 누리시며 사셨다.
예수님은 겸손하셨고 부모님에게도 순종하셨다.
주님은 마귀의 종의 역활을 한 가롯유다를 끝까지 옆에 끼고 어루만지시며 함께 사셨다.
예수님이 자라나신 고향에서는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했다.
우리안에 실제로 예수님의 생명이 살아있다면 우리에게도 믿지 않는 가족과 주의 사람들에게 이런 상황이 전개 될수있다.
보통 처음에는 많이들 견디기 힘들어해서 많이들 헤어지고 도망가고 관계형성에서 실패들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안에 주의 생명이 있기에 마귀가 가만 나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이것은 확실히 영적 싸움이다.
이것을 감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안에 주님의 생명이 살아있기에 우린 능히 이길수 있고, 이겨야 한다는것을 늘 기억해야한다.
우리는 종종 예수님이 나의 주인인데 주인을 오해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우리의 주인은 예수님이신데..우리가 주인이 되어 예수님은 헬퍼로 착각하고 부려먹는다.
보통 어떤 일이 발생하면
주님, 능력을 배푸소서 하고 주님을 자기가 원할때만 끌어들인다.
그러나 주님은 늘 주님의 때에 일하시고 주님의 방법으로 이끄신다.
보통 사람들은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질 못한다.
우리의 속성은 내 방식대로 일해주시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것을 깨닫기 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만약에 이것을 못 깨달으면 사람들이 자기곁을 떠나게 되어있다.
주님의 생명으로 일하는것이 아니고 인간적인 기질과 속성으로 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씀을 들을때 아프게 되어 있다.
우리 마음이 아프고 고통이 있어야 주님의 관점으로 변화된다고 본다.
예수님의 내면은 온통 하나님의 생각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오직 예수님의 관심은 아버지의 마음이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하나님께 집중된 마음이다.
우리의 정체성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바울도 우리의 애착은 하늘의 것들에 있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들에 집중되어 있는자를 주님은 찿으신다고 믿는다.
이것이 먼저 그나라와 그의를 구하라는 말씀의 의미가 아니던가.
주님께 우리의 마음을 고정할때 우리가 걱정하는 염려 어려움의 모습이 떠나간다.
이것은 영적인 훈련이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지만 얼마나 가치있는 훈련이고 주님의 일이던가.
이렇게 가치관이 바뀌면 비로서 우린 하나님을 나타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샘이 되어 흘러 나가게 된다.
우리는 어떤 위치에서 영적생활 하고 있는가.
곰곰히 집어보고 우리는 위로부터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임을 정확히 인식 할때, 우린 비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자가 될것이다.
예수님은 이세상에 가장 연약한 갓난아기로 오셨다.
우리도 이렇게 가난아기 같이 연약함으로 출발한다. 그러나 날이 가면서
우리의 연약함은 주님이 주시는 말씀으로 영양분을 섭취해야 장성한 분량으로 성장한다.
말씀은 단순하다.
우리안에 언제나 기쁨과 생동감이 넘치는가.
만약에 주님의 생명이 우리안에 살아 있다면 이렇게 살것이다.
주님이 우리안에 계시면 알파와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끝이라고 하신 분과 사는 것이다.
그런 주님이 우리안에 살아계시니 언제나 우린 영적으로 생동감있게 젊게 살아갈수 있다.
오 주님 우리의 생명은
주께 있나이다.
나의 죽을 육체에
주님의 생명만이 나타나게
역사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