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을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한번의 죽으심으로 여러분의 모든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죄가 없는 분이시지만 죄인을 대신하여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 모두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육체는 죽었지만 성령안에서 다시 살아나셔서 갇혀있는 영혼을 찿아가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벧전3:18,19 (쉬운성경)
우리는 예수를 영접하면 분명히 거듭남이 있어야한다.
구원은 예수님께서 이미 이루어놓으신 구원을 우리가 받아들이고 영접하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위로부터 거듭남은 예수님께서 우리안에오셔서그 실체의 세계속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우리는 고통이라는 것에 의해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위해 십자가에서 모진 고통 다 받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지만, 이제 우린 아무공로없이 예수님만 받아들이면 구원을 공짜로 선물받는다.
그래서 구원은 길프트 '선물'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것으로는 온전한 구원을 이룰수 없다고 본다.
원주민 선교를 지난주에 다녀왔다.
짧은 1박2일 이지만 참으로 많은 사역을 조밀하게 하고 돌아왔다.
먼저 우리팀들이 하나가 되는일 그리고 팀원들 식사 챙기는것부터 시작하여 ,원주민 아이들을 픽업하고 같이 놀아주고 영적인 엑티비티와...여러가지 , 심방 전도하고 어른들 디너초정 팔로우쉽과 교제, 말씀증거, 특송, 주일예배등 그리고 다시 토론토로 달려와 예배로 돌아오는 다양한 사역가운데 하나님의 도움없이는 한가지도 진행할수 없고 이룰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번에는 얼음 빙판이던 거리를 운전하는데 갑자기 차가 빙글빙글 돌아 언덕이던 길옆을 곤두박질해 차가 밑으로 빠지고 뒷바퀴기가 완전 위로 뻗치고 완전 전복될뻔 햇던 약간의 사고가 있었다. 깜짝 놀랄 큰 위기였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정말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토잉카를 불러 끌러 올리는 덕분에 모든 프로그램이 늦어졌지만, 그러나 모든 계획한 사역을 빠짐없이 무난히 할수있었고, 더불어 토잉카 가격도 엄청 저렴하여 우리를 놀래케하엿고 감사하여 팁까지 주고와서 안전하게 사역에 임할수 있었다.
저녁에 모여서 기도모임에 목사님께서 아침에 사고를 말씀에 비추어 메세지를 주실때 같이 은혜 를 받으며 이모든게 우리를 도우시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는 정말 표현할 길이 없었다.
모처럼 참석하신 목사님..ㅎ
주님 감사합니다.
정말 우리가 감사외에 무엇을 주님께 드릴수 있겠는가 ..더욱 깊히 깨닫는 시간이 되었다.
어제 같이 팀원들과 식사를 하면서 구원의 고통에 대해 대화가운데 나누게 되었다.
목사님께서 구원을 아기가 태어날때 잉태와 해산에 대해 비유하시며 설명하시는데 엄청 공감이 왔다.
구원은 우리가 단번에 쉽게 받지만,
마치 엄마가 아기의 씨를 받아 임신은 쉽게 이루어 지는것 같이 구원은 단번에 쉽게 이루어 지지만, 아기 가 태어날때 해산의 고통은 엄마가 감당해야 하는것 처럼 우리의 구원의 삶도 이런 해산의 고통을 거쳐야하는것에 성경을 비추어 목사님께서 나누어 주시는데.. 아 맞아 맞아 속으로 감동이 되었다.
그래 이게 진짜 성도의 교제구나 하고 다시금 생각했다.
고통. 그렇다.
우리는 고통에 의해 다시 위로부터 거듭나야 한다.
이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고통이다.
거룩의 고통 이것인 것이다.
이제는 우리안에 예수님이 잉태되어서 우리가 육체가운데 사는게 아니라 나를 위하여 자기몸을 버리시고 우리안에 오셔서 사시길 원하시는것..
그렇게 살아가는것은 실제로 우리의 거룩한 삶의 고통의 시작이다.
우리의 권리,생각, 중심, 기질, 성격, 자라온 환경, 지식, 위치 이 모든것을 십자가의 고통에 연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가운데 고난속에서 가장 위대하게 표현한 것이 십자가이다.
거듭난 사람들은 이런 고통, 해산의 수고를 하는자야 라고 생각해 본다.
십자가는 가장 고통스러운 곳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가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지심으로 모든것을 다 이루시고 삼위일체를 이루신것 아닌가.
그래서 십자가의 고통은 최고의 의미이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기 위해 이미 예수님이 십자가의 고통을 치루었지만, 이제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가 되기 위해 거룩한 고통을 치루어야 된다.
내안에 있는 자연적인 모습을 십자가로 죽이며 사는것이 쉬운 일인가..
그러나 이것은 위대한 싸움이다.
그것이 거듭난 사람 아닌가.
위로부터 오는 거듭남은 이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 라고
성경학자 니고데모에게도 말씀하지 않았는가...
거듭남은 예수님이 우리안에 오셔서 사시는 것이다.
예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인것 같이 우리도 하나가 되길 원하신다는 것은 십자가의 완성이 아닐까..
주님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 무엇일까..
나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거듭남의 고통 즉 거룩의 고통을 우리가 거쳐야 할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해 본다.
정말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있는가...
난 이것은 하나님이 예수님과 하나가 된것 처럼 우리도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니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본다.
이것이 쉬운가.
솔직히 해산하는 고통과 같지 않은가..
나를 죽이고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주님만 바라보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삶은 쉬운일인가...
이것은 많은 묵상의 시간들, 친밀한 시간 즉 주님과의 시간을 충분히 보낼때 이루어질수 있는 아름다운 고통의 시간이다.
이것은 선포하고 증거하는 삶이 아니라 주님안에 거하여 묵상하며 움직여야할 숙제들이다.
그것이 우리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믿음의 증거 아닌가.. 이것이
이제 육체가운데 사는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것이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라고 본다.
구원의 여정은 결코 쉬운것이 아니다.
갈수록 세상은 더 쉽게 살도록 우리를 유혹한다.
교회안에 너무나 세상적인 문화가 자리잡아서 판을 치고 있다.
너무나 교회는 제쳐놓고 자유롭게 신앙생활하는 자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도무지 어떤 모습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파악이 안돼는 사람들이 많다.
판단할수도 없고 판단해도 안되는 것이지만 분명한것은 우리가 거듭난 생활을 하는것은 분명히 영적인 내면의 고통이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를 둘러보면 교회에 관련되어 일하는것은 싫어하고, 주일에만 달랑 교회와서 예배만 드리고 교제도 안하고 교회의 일에는 관심도 없고 집으로 돌아가기 바쁜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된다.
주님의 관심은 어디에 있을까..요즘 나름 심각하게 고민하며 생각해본다.
왜 교회는 있어야 하고, 우리믿는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나.
분명히 위로 부터 거듭난 사람은 쉽게 살아가진 않을 것이다.
우리안에 계신 예수님으로 살아가기 위해 고통하며 믿음으로 살때,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받아들이며 사는자들이 아닐까..생각한다.
그러나 갈수록 세상은 강팍해지고 점점 사람들은 세상의 문화에 쫓아가느라 바쁘다.
그러할지라도 한명이라도 온전한 구원 즉 거듭난 영혼을 만들어 내는것이 우리의 사명이고 교회의 사명이라고 생각해 본다.
주님 날이 갈수록
강팍해 지는 사회와
교회를 봅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기 원합니다.
주님, 더욱더 거듭난 영혼들이
교회에 넘쳐 나길 기도합니다.
어느곳에 가든지 주님의 교회에
충성하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빛을 보도록 이끄소서..
우리로부터 오는 거듭남의 삶을
살아가게하소서..
주님과 하나되게 하소서..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