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 양이 보통 것보다 작거나 생긴 모습이 성하지 않은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스스로 원해서 바치는 제물이라면 바쳐도 괜찮다. 그러나 맹세한 것을 갚기 위해 바치는 제물이라면 바칠수없다.
레22:23 (쉬운성경)
레위기에 22장에 보면 계속 하나님의 성물을 먹을수 있는 자들의 신체적 조건과 신분의 조건등을 언급하고 이어서 하나님께 제물을 바칠수있는 동물의 구체적인 실례를 들어가며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오직 흠없고 깨끗한것만 드려야 함을 재차 강조하고 상세하게 가르치고있다.
여기서 오늘 서원제와 낙원제에 대해 새기에 목사님이 가르치셨다.
서원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맹세한것으로 반드시 갚아야 하지만, 낙헌제는 감사헌금같이 주님께 최상의것을 드린다는 의미가 있고 예수님도 희생제물로 주님께 드리므로 낙헌제라고 볼수있고 많은 생명을 살렸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즉 낙헌제에 소나 양이나 수컷의 염소는 최상의 것으로 드려야 되는데 그것의 의미는 강하고 이기는것 승리하는것을 말하고, 예수님이 마귀에게서 승리하신것 같이 하나님께 최상의 것으로 우리가 제물을 드리므로 우리는 마귀에게 이기고 승리함을 의미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상처나고 결함이 있거나 종기가 있고 흠이있거나 피부가 안좋은 것은 드리면 안되고 가장 최상의 것을 드려야 한다고 하셨다.
중요한 말씀이다.
우리는 주님께 예배를 최상으로 드리고 있는가..
예배는 승리한 병사가 왕께 나와서 승리함을 알리고 입을 맞추는 의미가 있다고 들었다.
과연 우리는 세상에서 찌들고 엎어지고 싸우던 그런 모습에서 이기고 승리하여 최상의 모습으로 주님께 드리고 나아오고 있는가..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도무지 이길수가 없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다.
그 제물을 받으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예수님을 선물로 주시고 믿는자는 구속의 선물을 주셨다.
예수님이 주님께 희생제물을 드리므로 마귀에게서 시달리는 인간을 생명으로 값주고 사셨다.
그래서 우리는 이스라엘 제사의 복잡한 시스템을 거치지 않고, 오직 예수님의 피와 살로 말미암아 살아갈수 있고 예배도 자의로 드릴수있는 것이 아닌가..
물론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 주일에 드리는 예배가 이스라엘의 사밧예배만큼 중요하다고 본다.
주님은 우리가 언제나 최상의 예배를 드리길 원한다고 본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예배의 모습은 어떠한가..
생각해본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토라말씀을 생명이상으로 여긴다
토라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말한다고 한다.
그래서 절기와 제사법을 신중하게 여기고 철저히 지켜나가는걸 볼수있다.
그리고 토라를 열심히 읽고 외우고 손에 매고 다니기도한다.
토라말씀이 자기를 지킨다는 의미같다.
그만큼 하나님과의 언약을 소중하게 여기고 자부심도 대단한것이다.
그래서 늘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것이다.
이스라엘에 가면 여기서도 철저하지만 모든 절기는 공휴일이고 아무것도 안한다.
회당에가서 예배드리고 열심히 지켜나가는것을 볼수있다.
예전에 내가 일하는곳은 유태인 변호사가 많고 유태인 뱅커와 스탁거들이 많은 중심빌딩 이었다.
유대인 절기가 되면 모든 사업들이 조용하다.
다들 휴일로 쉬기 때문이다.
그래서 절기에 맞추어 음식도 조절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매상에 큰 차이가 났었다.
유대인의 일주일의 삶을 보면 상당히 가족중심이고 집에서도 금요일이면 온갖 집안 구석구석 대청소하고 가정에서 예찬하고 주중에도 회당에가서 예배하고 토요일엔 샤밧예배 드리고 성도들과 교제하며 열심히 영적생활 하는것을 볼수있다.
우리도 그런 열정을 닮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들은 유대관계가 참좋다.
많이들 부유하기에 이곳 캐나다에 보면 참 윤택하게 보인다.
자부심도있고 사귀어보면 참 좋은사람들이다.
다행이 유대인 변호사 손님이 많아서 많이 사귀어본 기억이난다.
오늘 말씀속에서 정말 귀하고 강하고 좋은것을 주님께 바치는 낙헌제 제물을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세상에서 예수님의 피와 살로 승리하고 최상의 것을 가지고 주님께 감사로 우리의 몸과 마음과 물질을 최상의 컨디션과 물질을 드려야 함을 더 깨닫게 했다.
물론 아픈사람도 있지만 우리영혼은 최상으로 드릴수 있지 않은가..
주님은 이미 우리에게 최고의 예수님을 주셨다.
그의 피와 살을 우리에게 보혈과 말씀으로 주셨다.
더이상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없다.
세상에서 승리하여야 할것은 예수님의 피와 몸, 즉 말씀이다.
말씀이 우리안에 있으면 모든걸 능히 이길수있고, 우리가 순간적으로 죄가 들어오면 예수의 피로 씻고 악한생각은 예수이름으로 마귀를 물리치면된다.
그리고 세상에서 승리한 삶에 감사하여 우리의 영혼육의 최상의 것을 주님께 예배로 드리는것 아닌가...
무엇이 두려운가..
사람들은 마치 예수님이 도덕적으로 오신양 가난한사람 소외되고 병들고 아픈사람들을 돌보지 않는다고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나라를 구하라고 아우성 처댄다.
주님은 물론 그런자를 위해 오셨다.
반드시 우린 돌봐야한다.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아닌걸 알아야한다.
주님은 주님이 목적이시다.
우리가 주님이 목적인가 아니면 내가 원하고 생각하는것이 목적인가..내 아들 딸 가정이 목적인가..아니면 세상의 가난한사람 소외된 사람들이 목적인가, 정치나 그런 도덕적인 것이 목적인가...생각해 봐야한다.
우린 너무 한곳에 집중하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것 아닌가..
모두들 내가 할 도리만 하면 된다.
내 주의의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돕고, 또 지역을 넓혀서 선교지를 도울수도있고 ,주의의 연약한 영혼들을 위해 돕기도하고 중보기도로 기도하면서 나아갈수있다.
그런데 요사이 젊은사람들은 너무나 똑똑한척하고 너무나 사회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이 목적이다.
우리가 먼저 예배에 최상의 것을 드려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에게 맡겨진 주님의 일을 예수님의 사랑으로 할수가 있는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 위해 이땅에 사는것이다.
우리의 가치와 본질을 늘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떤 유명한 사람이라고 몰아치면 안된다.
그분이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해 사신다면 그분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시고 있는 것이고 그분의 몫을 감당하시는 것이다.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은 대화가 안된다.
아무리 열심히 둘이서 떠들어도 본질 자체가 다르기에 결국 대립으로 끝나는것을 볼수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영적이길 원한다.
바울도 이세대를 본받지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물로 드리라고 하셨다.
우리의 육신의 몸도 영적으로 드리라고 하신다.
그것은 화목이다.
너희가 화목한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제사라고 하셨다.
우리는 분별해야한다
이 세상에는 영적인 사람이 있고 육적인 사람이 존재한다.
교회안에서도 항상 육적이고 혼적인 사람 때문에 골치를 썩고 문제가 터지는것이다.
영적인 사람 즉 성령의 사람은 육과 혼도 지배하는 능력이 있다.
그것은 얼마나 말씀을 영적으로 해석하느냐 성령으로 받고 있는가 아닌가에 딸려있다고 본다.
그래서 기도와 말씀을 늘 연결되어 있고 성령으로만 말씀을 깨달을수가 있는것이다.
언제나 나의 영이 육과 혼을 지배하여 말씀과 성령의 사람으로 날마다 승리하고 주님께 최상의 것으로 드려서 예배하는자가 되길 소망한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얼마나 주님께 감사한지.
날마다 감사의 예물을
왜 드려야 하는지 또
깨닫습니다..
주님 날마다 예수의 보혈과
주님의 몸이신 말씀으로
승리하게 하소서
그리고 승리의 깃발을 올려 드리며
최상의 모습으로
예배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