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로그인
    • 갈라디아서 말씀 나눔 1,2장

      날짜 : 2016. 11. 14  글쓴이 : 최정민

      조회수 : 2269
      추천 : 0

      목록
      • 제가 지난 몇 주간 갈라디아서를 가지고 매주 한 장씩 읽고 묵상을 하고 은혜받은 점들을 "청년부말씀꿀맛방"에 나눈 글들입니다.


        갈라디아서 1


        1.     하나님께선 은혜와 평강의 근원이십니다. (3-5)

        은혜와 평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아들 예수께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에 메여,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우리를 구출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에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가 은혜와 평강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세상 가운데 살지라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죄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을 선물로 받은 우리는 성령님과 동행함으로 비록 세상 가운데 살지만,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하는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삶을 살아갈 특권을 받았습니다. 은혜와 평강의 그리스도를 누리는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직 은혜로만 받은 믿음이기에 우리는 복음에 빚진자로써의 삶을 살아야합니다.


        2.     우리에게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8,10)

        우리는 스스로 구원을 이루려는 복음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은혜로 말미암은 구원으론 부족하다 여기어 더 간편하고 더 인간적인 방법을 주장하는 복음으로부터 멀어져야 합니다. 왜냐면, 이것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또 자기를 기쁘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만일 우리의 기쁨을 위한 복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다른 복음에서부터 멀어집시다. 나를 드러내고, 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편하게 하는 값싼 복음에 의지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것에 감격하고 감동하는 우리가 됩시다.


        3.     참된 믿음은 변화하며 성숙하는 믿음입니다. (13-16)

        하나님께서 이미 바울을 예정하시어 바울이 태중에 있을 때에 따로 세우시고 은혜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바울은 복음을 증오하며 그리스도를 박해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직접 나타나시어 바울을 은혜의 전도자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바울이 다메섹에서 목격한 밝은 빛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그 자체를 뜻합니다. 그 영광의 빛을 목격한 바울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모든 것들을 내어드려 항복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기의 죄의 깊이를 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본 바울은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가는데에 망설이지 않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한다면, 우리들 또한 그 영광의 빛을 목격한 자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에게 삶의 변화가 있습니까? 믿음의 성숙이 있습니까? 마귀는 우리의 믿음이 자라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온갖 계책으로 방해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돌아봅시다. 그리고 결단합시다.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성장시키시는 하나님을 의지합시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길 원하십니다.


        갈라디아서 2


        1.     할례의 참 의미 (2-5)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할례를 명한 것은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의 징표를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이 언약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통해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주의 백성들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져,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언약의 약속입니다. 이 언약의 증표는 말 그대로 내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에 속한 자입니다하는 고백과 같은 것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가능성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습니다하는 고백인 것입니다. 바로 나를 죽이는 고백인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할례의 의미가 변질되었습니다. 바로 행위로 말미암은 나의 를 세우는 의미로 변질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할례를 선택 받은 백성의 증표로 삼아 자기 자랑을 삼을 때, 바울은 그러한 율법주의적 복음을 부정했습니다. 왜냐하면 할례는 우리의 공로의 증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주권, 왕 되심을 나타내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2.     마음으로 받은 할례 (11-14)

        베드로는 이방인과의 식사 자리에서 율법주의자들을 만나자 그들의 비난이 두려워 이방인과의 식사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이 행위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일어나, 바나바와 같은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준 사건이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공분하여 공개적인 자리에서 베드로를 책망합니다. 베드로의 외식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일어난 사건이기에 공개적인 자리에서 책망을 한 것이지요. 바울의 이 같은 행동은 베드로의 실수가 복음의 참된 의미를 변질시켜 이방인 선교에 큰 장벽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할례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할례의 근본적인 의미를 충실히 살리는 자들입니다. 곧 언약 백성으로써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란 의미입니다. 할례는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하는 증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 받고 하나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외식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를 들어내지 않습니다.


        3.     하나님에 대하여 산 우리 (16-21)

        베드로의 실수를 통하여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같이 할례자의 사도된 자 또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봅니다. 그것은 바로 율법을 통하여 무엇을 보느냐에 차이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통하여 나의 죄 됨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죄의 깊이를 봅니다. 그리고 매일매일 애통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었습니다. 그리고 발견한 것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예정과 구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에 의존하기를 포기합니다. 자기의 의와 공로를 포기합니다. 십자가에 그리스도와 못 박습니다. 매일매일 죽는 삶을 선택합니다. 율법을 지켜냄으로써 선민의 자랑거리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기함으로써 내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그리고 내 안에 그리스도를 의지 하기 위해선 성령충만 만이 답입니다. 성령충만한 삶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죽었다 다시 산 내 영이 하나님의 영과 연합하여 내 마음과 의지와 생각마저도 하나님의 은혜로 굴복시키는 삶을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산 자들입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에 무릎 꿇고 순종할 때만이 생명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매일매일 죽음으로 매일매일 부활하는 체험이 있길 소망합니다. 그리스도를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나 또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신고하기

    • 추천 목록

    • 댓글(0)

    • 글을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