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난 몇 주간 갈라디아서를 가지고 매주 한 장씩 읽고 묵상을 하고 은혜받은 점들을 "청년부말씀꿀맛방"에 나눈 글들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함(칭의)을 얻습니다. (6)
인간의 기준의 “의”란 “나”의 기준과 공로를 세우고 “나”라는 우상을 하나님의 영광과 맞바꾸는 일입니다. 율법은, 옛 언약, 즉 모세 언약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다 지켜 행하여 인간 스스로가 의롭다함을 얻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 언약을 주신 이유는 명백합니다. “너희 인간들은 내 은혜가 아니고선 절대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다” 라는 메시지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율법이라는 완전한 하나님의 기준을 바라보는 인간은 절망 가운데 하나님 앞에 부르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내가 도무지 하나님의 이 완전한 기준 앞에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어 주시옵소서.” 하는 가난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31장에 기록 되었듯이 새 언약을 주십니다.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가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이루려는 나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지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의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만이 의롭다함을 얻는 일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그 완전하신 기준 앞에 엎드려져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길 소망합니다.
2. 은혜로 말미암아 죄로부터 구속되었습니다. (13)
새 언약이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완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율법, 옛 언약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려 했습니다. 하지만 이 옛 율법은, 죄로부터 영원한 구속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심판에 기초한 언약이었고, 오로지 제사장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밖에 없는 제한적인 언약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복적인 제사, 행위를 통하여 구원을 얻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율법의 참 의미는 의로움을 이루는 도구가 아니라,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존재하는 “죄”를 발견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초등교사”에 비유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선 새 언약을 주심으로써 스스로가 구원을 이루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이루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로 예수그리스도를 나무에 메닮으로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며 믿는 우리를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입니다. 새 언약은 우리를 죄로부터 영원히 구속하였으며,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고, 우리가 그리스도를 힘입어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오게 했습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영원한 구속을 얻은 것입니다.
3.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것이 되었습니다. (29)
은혜로 말미암아 칭의와 구속의 은혜를 하나님께서 베푸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우리를 하나님의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우리의 죄의 문제에 해결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죄가 다 사하였으니 이제 모든 것 끝이다!”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것이라 확증된 우리는 믿음의 유업,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할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입니다. 구원은 끝이 아니라, 출발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십자가에 100퍼센트 다 이루심과 동시에 또 100퍼센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야 합니다.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으면, 죽었던 우리의 영이 다시 생영이 됩니다. 그리고 그 다시 산 중생한 영은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잘 받으며 순종하며 따르는 중생한 영은 반드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이뤄 나갈 수 있습니다. 작디작은 겨자씨가 장성하여 큰 나무가 되듯이, 작디 작은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장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내 삶 가운데서 이루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것이라 선포 된,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유업을 이을 자의 소명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을 하나님께서 올바로 통치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나”라는 의를 버리고 오직 은혜로 말미암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1.
종과 아들의 차이 (7)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종이었던 우리를 속량하시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율법의 종이란, 우리의 노력과 공로로는 절대로 구원에 이를 수 없는 영원한 저주 가운데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성경인 말라기의 끝은 저주로 끝납니다. 구약의 마무리를 저주, 인간은 영원한 저주 아래 있다라는 결론으로 구약성경을 마무리합니다. 율법, 돌판에 쓰여진 옛 언약은 율법이라는 기준 아래 있는 인간이 얼마나 추악한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무서운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추악한 우리를 아들 삼으셨습니다. 돌판에 쓰여진 저주스러운 율법이라는 옛 언약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쓰여진 새 언약을 주시고 우리를 아들 삼으셨습니다. 종은 유업을 물려받지 못하고 영원한 형벌 가운데 있으나, 아들은 유업을 물려받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은혜를 얻은 것입니다.
2.
두 언약 (22-23)
바울은 하갈과 사라의 비유를 통하여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옛 언약은 율법을, 새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말합니다. 이 둘을 설명하고자 한 이유는 율법과 은혜의 근본적인 차이를 말해주기 위함입니다. 하갈은 여종이라 표현했고, 사라는 자유 있는 여자라 표현했습니다.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은 종, 사라의 아들인 이삭은 유업을 이어받을 아들입니다. 이스마엘과 이삭 둘다 아브라함의 아들로 보이지만, 실상은 그 둘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자와 들어갈 자로 다릅니다. 오직 이삭, 은혜를 통한 구원을 통하여 우리를 하늘의 예루살렘의 자유자(26)로 삼아주셨습니다. 율법인 이스마엘로는, 우리의 노력과 공로는 하나님의 은혜에 미치지 못합니다. 오직 이삭, 새 언약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구원을 얻습니다.
3.
성령을 따라 난 자 (29)
우리는 자유 있는 여자의 소생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로 죄의 종 되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핏값을 주고 사셨음을 말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고난을 기쁜 마음으로 받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한 것처럼, 성령을 따라 난 우리는 육체를 따라 난 자에게서 박해를 받습니다. 사탄은 끊임 없이 우리의 믿음을 공격합니다. 우리의 중생한 영을 육체적인 방법과 전략으로 공격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 난 은혜의 자녀임을 의심하게 하고 그 연결 고리를 끊어뜨리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반증하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이러한 고난도 달게 받습니다. 왜냐하면 이 끝에 드러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내 삶에 이뤄질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의지합시다. 돌판에 쓰여진 약속이 아닌, 내 마음에, 삶에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의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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