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2장
디도서 2장은 장로, 감독관들 뿐만 아니라 전 성도가 갖추어야 자세인 "경건하지 않음과 속된 정욕을 버리고, 지금 이 세상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딛2:12) 사는 모습에 대해 말하며 또 그 이유와 원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버려서 우리의 믿는 자의 죄를 사하시고 영생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갈 6:14) 라는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는 속된 육체의 정욕을 버리고 오직 "우리의 복된 소망 곧 위대하신 하나님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기를 고대합니다." (딛 2:13) 이 소망을 품고 사는 자에게 세상것을 탐내고, 빼앗고, 속이고, 또 세상에서 자신을 나타내고 남 위에 올라가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더 나아가서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일을 손해로 생각하지 않고, 선한 일을 나타내시기를 원하시는 성령님이 명하시는대로 기꺼이 순종합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심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같은 믿음으로 나아갈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이니" (히11:1)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약속이 내일도 해가 뜰 것이라는 것과 같이 명백한 사실로 여겨지고, 보이지 않는 소망이 실재하는 손처럼 우리의 삶을 주도해서 그 움직임으로서 움직이시는 분의 존재를 스스로에게, 또 남에게 증거하는 상태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이런 온전한 믿음에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우리를 교육하시는 것이고 (딛 2:11-12), 우리는 오직 주님을 신뢰할 뿐입니다.
마가복음 9장에서 귀신들린 아이를 예수님의 제자들이 고치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변화산에서 돌아오신 예수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자식의 회복을 소원하며 이렇게 말하였다고 나와 있습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막9:24) 예수께서 귀신을 쫒아내시고는 말하시기를 "기도 외의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 (막9:29) 하셨습니다. 말씀에는 예수께서 단순히 귀신은 꾸짖어서 쫒아내셨다고만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시는 기도는 앞서 나온 아이의 아버지의 간절한 고백, 혹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아시고 온전히 순종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뜻한 것이 아닐까요?
위에 언급한 마가복음 9장 29절의 개역개정판의 역주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기도- '신자와 하나님과의 교제, 하나님을 향한 간구' 로 정의된다. 인간의 무능력과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며, 그분을 신뢰하는 태도로서 그 자체가 하나의 신앙고백이다.
이끄시며 행하시는 주 앞에 기도로 무릎꿇어 우리의 삶에 하나 둘 맺혀가는 믿음의 결실을 보기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