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요13:34-36
우리는 도미네 쿠오 바디스( Domine quo vqdis) 이 말를 기억한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그 유명한 영화 쿼바디스에서 베드로가 남긴 말이기 때문이다.
난 이 영화를 보면서 어린 중학교때 많이 눈물로 흘린 기억이 난다
그때는 가끔 학교에서는 단체로 좋은 영화를 관람하곤 했었다.
그때는 예수를 안 믿었기 때문에 참으로 신비스럽고 감동이었던 기억이 새롭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손수 물을 떠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과 서로 사랑하라고 새 계명을 주신뒤에 심리적으로 불안전한 행동을 보이면서 자신이 예수님을 정말 사랑함을 나타내는것에 재빠르게 고백한다.
영적으로 제자들은 모두 무지한 상태이지만 베드로는 급한 성격때문에 예수님의 수제자임에도 불구하고 주를 부인하기까지 하여서 사단아 물러가라 라는 언어로 책망까지 받기도 한다.
이일은 우리가 아무리 교회에 충성해도 성령충만하고 성령으로만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릴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실제로 베드로는 예수님의 부활 후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한 복음 전파자가 되었고 주를 위해 순교 당한 수제자가 되었다.
우리는 가끔 주를 위해 무엇을 한다고 고백하지만 세상의 위협과 물질이 어려워지면 쉽게 무너진다.
이렇게 세상과 타협하므로 주일도 지키지 못하는것이 현실이다.
베드로가 쓰다쓴 좌절과 실패가 있었지만 자신을 온전히 비우고 주님을 따라갈수 있었던 것은 온전히 성령께서 함께하시므로 자신의 철저한 회개와 결단이 있었음을 기억해야한다.
얼마전 어떤분이 어느누가 쓴 안식일에 대한 글을 보고 자신이 지키지 못하니까 반발하는 댓글을 보았다.
그러나 그분은 예수님을 믿고 있었으며,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그러나 매우 반발하고 자기 해석으로 설득하는 댓글을 보았다.
세상에서 12시간이상 일하고 매일 일해야 하는 직업이기에 주일은 쉬지 못하니까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는데...읽는 나에게 많은 동정심과 궁휼함이 일었다.
그분 이야기는 매일 매일이 주님과 함께 있으니까 안식일이고 안식일이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교회라는 자체를 아예 무시하고, 무교회 주의자이고, 주일에 교회 가는것 자체는 본인이 일을 하기에 주님이 가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는둥 자신이 불가능해서 주님도 이해하신다는 설득이었다.
그리고 예수님 자체가 자신이 안식이라고 했다고 따지는 글이고, 성경을 읽어보라고 복음서 몇장 몇절을 드리대며 오히려 주의 종을 가르키는 글 이었다.
보는 내내 불편했지만 그 댓글에 글을 쓴 사역자가 답글을 미처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한 영혼이 시험에 들게 할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간단히 한마디 했다.
안식은 이미 창조주 하나님이 법으로 정한것이기에 인간이 움직일수 없다는것과 주님께 일주일에 주일은 쉬게 해달라고 기도해 보라고 권면했다.
그리고 기도하면 주님이 분명히 무어라 말씀하실것이고 귀를 기울이면 도우실것이라고, 인간의 편한대로 주님이 안식일을 바꾸는게 아니라고 부언했다.
그것밖에는 딱히 할 이야기가 없었다.
예수님을 갈망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분처럼 보여서 매우 안타갑게 여겨졌다.
이와같이 세상에서는 순수하지만 자기뜻대로 믿는자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주님은 네 중심이 아니고 주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명령한다.
그래서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을 받기전에는 주님의 뜻을 분별할수 없다.
성령을 받아도 성령 충만 하지 않으면 자기뜻대로 처리해 버린다.
정말 우리는 자칫잘못하면 무교회주의로 가고 자칫잘못하면 성경을 왜곡 할수있다.
마지막 때에 마귀는 어느방법이든지 교회를 못나가게 막는다.
이것은 마귀가 우리에게 거는 마지막 시험이다.
교회에 안가게 하는게 마귀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에도 "마지막 때에 모이기에 힘쓰라..." 경고한다.
믿는사람들과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게 마귀 즉 그들의 수작이다.
교회에서 보면 은근히 당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사람들은 반드시 나중에 교회를 떠나거나 안나온다.
우리는 내가 할수 없는걸 노력하면서 나를 죽이고 믿는 사람들과 연합하여 예배하고 주의 일을 해나가야 한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다.
그래서 교회는 중요하다.
예수님은 애초에 제자들을 불러서 같이 교회를 이루며 사시고 제자들을 양육하셨다.
이부분에서 우린 늘 생각해야한다.
교회를 떠나 혼자 영적생활 하는것은 위험한것이다.
세상은 일에 지쳐서 먹고 살아야 하기에 일때문에 교회를 못나오게 막는다.
이것은 자신을 위해 주님이 따라오라는 자기중심의 신앙이다.
먹고사는것도 주님이 책임져 주시리라는 영적 권위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이것은 세상에서 지는 행동이다.
우린 세상을 거스려 올라가야한다.
당당하게 내가 직장을 잃을지라도 주일을 쉬도록하고 물질이 적게 벌더라도 옮길수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분명히 세상에서는 손해를 보게된다.
우리가정도 주일성수하기위해 항상 주일은 쉬는 사업을 선택했고 직장도 토요일과 주일은 쉬는 직업을 선택했다.
선택이다..세상의 일은 선택이다.
그러나 주님의 일은 내가 지키는것이다.
주님이 대신 지켜주시는 것이 아니다.
내가 주님의 법에 지켜나갈때 세상에서는 손해를 보고 힘들어도 우리의 영혼은 평강이 있고 천국이다.
결국 자녀들도 우리로 말미암아 잘된다.
주님은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 라고 새계명을 주셨다.
이 말씀은 구약의 중심 주제인 "이웃을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19:18) 의 말씀을 강화한것이다.
여기서 우린 질적인 차이를 발견해야 한다.
구약에서는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상대주의적인 차원이지만, 예수님이 '서로 사랑하라' 라는 배경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자기 희생적인 사랑의 차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즉 십자가의 사랑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후 성령이 임하고서야 발견했을 것이다.
말하자면 새 계명은 신구약을 통털어 한마디로 요약한 기독교 중심사상이다..
바울도 믿음 소망 사랑이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라고 언급하였다.
실제로 초대교회에서는 새 계명을 힘써 지키므로 뭇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었다.
예수님이 새 계명을 주시기 전 배반한 가롯유다를 포함한 12제자의 발을 씻기시고 사랑과 겸손의 본을 보이신것은 교회도 그렇게 하라는 지상 명령의 모범이다.
오늘 새기에 전도사님이 예수님이 발을 씻기시는 장면을 말씀하면서 우리의 발은 맨아래에 있는것이고 가장 냄새나는 더러운 곳이기에 우리가 밑으로 내려가야 씻을수있다고 표현하면서, 사랑은 이와같이 낮아지고 섬기는 자세라고 표현하는데 나름 공감이 왔다.
맞다. 지금 교회는 욕을 얻어먹는다 .
예수님의 새 계명을 잘못 오해하고 실천하지 못한 결과 아닐까.
자기랑 교리가 다르거나 생각이 다르면 발끗하고 반발하는 사역자나 우리들의 모습이 상기된다.
우리는 예수님 같이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수님이 보여 주신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참으로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주님 당신의 낮아짐은 발밑까지 였읍니다.
물을 떠다가 허리를 굽히시고
발을 씻어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주시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주님, 우리 교회들도
그렇게 낮아지고 섬기고
주님의 사랑을 나타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