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친구여, 우리는 분명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아직은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있게 될지 알 수 없지만 , 그리스도께서 다시오실 그때에 우리의 모습이 그와 같을 줄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참모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일3:2(쉬운성경)
우리의 미래는 불확실하다.
영적인 삶의 속성도 확실하지 않다.
우리가 혹시 영적으로 어떤 교리나 조직에 붙들려있으면 확실히 그 사람은 영적으로 생명이 없고 딱딱하다.
세상에서는 인간적인 확신으로 사람들을 매료하고 성공을 가져다주지만, 영적으로 보면 인간적인 확신은 생명이 없다.
인간적인 확신은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라 자신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얼마나 위험한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것들의 증거라고 하신다.
이것은 불확실한 것을 우린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는것이다.
믿음과 소망은 영적인 원리이다.
우리는 확실하게 보이진 않지만 하나님을 확신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더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지 미래를 알기를 원하시지 않는다.
주님과 동행할때 하나님의 존재만 부각되길 원하지 그 어떤것도 주님은 기대하길 원하지 않는다.
나의 모든것을 주님께 맡기고 보이지 않고 확실하지 않지만 주님만 의지하기를 바라신다.
이것이 믿음과 소망이 같이 가는것이고 은혜인 것이다...
주께 모든걸 맡기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순종하며 살아갈때 주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일을 이루어 주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적인 확신은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라 자기 믿음을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언제나 삶 가운데 하나님보다 자기가 앞서기 때문이다.
욥의 친구들을 보면 참으로 인간들의 속성을 알수있다.
믿음이 있다고 하지만 다들 자기 확신으로 가득찬 친구들이었다.
그들의 하나님의 대한 지적수준은 대단했다.
그러나 그 지적수준은 하나님에 대한 자신들의 믿음이었다.
그들은 욥을 하나님의 중심으로 보는게 아니라 자신들의 믿음의 잣대로 평가하며 욥을 정죄했다.
우리는 자주 이런 사람들을 교회에서 만난다.
말씀을 많이 알지만 겸손하지 못하다.
그래서 그곁에 가면 늘 상처받고 시험들고 그런다.
대부분 성도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한다.
문제는 교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고 할수있다
하나님과 영적인 삶을 우리의 전부로 가르치지 않으면 사람들이 혼동한다.
분명히 교회에서는 예수님의 중심으로 사는 영적인 삶이 우리의 삶의 전부가 되도록 가르쳐야한다.
과연 우리는 얼마나 주님께 투자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모든 삶에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이 최고 우선으로 살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 한분만 있으면 모든것을 다 잃어도 평강이 있는가..
이것이 건강한 영적인 삶이다.
우리는 보통 영적인 삶을 기도나 봉사 말씀훈련이나 순종 헌신 이런 것을 가지고 평가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것을 깨닫는 마음이다.
산상수훈의 첮번째 가르침은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늘나라가 저희 것임이요 하셨다..
즉 무엇보다도 나는 연약하고 마음이 가난함을 깨닫는것이 첮번째 영적인 생명을 누리는 삶이다.
말하자면 나의 자아의 죽음을 인식하는자는 복된자이다.
이것의 바탕으로 우리가 기도와 헌신과 순종이 이루어질때 우린 주님의 생명으로 늘 충만한 삶을 누리게 되리라 믿는다..
아멘, 날마다 나의 마음이 가난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