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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도서 7-12

      날짜 : 2017. 05. 22  글쓴이 : 장지수

      조회수 : 2285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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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도서 7장 

        16 지나치게 의로운 체하지 말고, 지나치게 지혜로운 체하지 마라. 그러다가 망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17 지나치게 악하게 굴지 마라. 어리석은 자처럼 굴지 마라. 어찌하여 제 수명을 다 채우지도 못하고 죽으려 하는가?
        18 이것도 잡고, 저것도 놓지 않는 것이 좋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이 모든 극단을 피할 것이다.


        오랫동안 16절의 말씀이 납득이 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라면 선함을 향해 날마다 전진해야 할텐데, 어찌하여 지나치게 의롭지 말라고 하지? 그러다가 결국 나에게 하나님께 드릴 온전한 마음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내가 선함을 위한 노력이라고 부르는 것들이 나를 오만하게 하고 있음을 인정했습니다. 내가 스스로의 행위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모은 손으로 바닷물을 옮길 수 없듯이 부질없는 일입니다. 물론 이것은 악하고 어리석은 것을 관용하거나 행위를 포기하라는 뜻의 말씀은 아닙니다. 하지만 뒷꿈치를 든 상태에서는 먼길을 가지 못하기에, 자신의 나약함과 신앙의 현주소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가장 우선되야 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겸손히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는 기쁨으로 나를 희생하는 삶으로 이어집니다.
         
        많은 교회일로 힘들어하며 성실하게 동참하지 않는 형제를 못 마땅히 여기고, 또 그와 비교해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인 것 처럼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저의 의견과 상황에 공감하며 저를 칭찬하고 그를 나무라기도 했습니다. 한껏 의롭고 지혜로운 척 하던 저는 금세 얕은 인격의 밑바닥을 들어내었고, 결국 주님에 대한 경외로 시작하지도 기쁨과 감사로 행해지지 않았던 저의 섬김은 오래 가지도, 좋은 열매를 맺지도, 진정한 동역자를 얻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몬트리올에서 다니던 교회에서 항상 헌신의 본을 보여주시던 장로님께서, 내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누군가가, "그는 참 대단하다. 나는 저렇게는 못 한다." 라고 생각한다면 나의 수고는 반 이상이 실패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신것을 기억합니다. 나의 마음이 감사함으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일을 하는 것은 나의욕심 이나 죄책감, 또는 다른 선하지 않은 마음이 작용한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자신을 나타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고, 이런 마음으로 하는 일들은 자신에게도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게도 덕이 되지 못합니다. 믿는자는 언제나 진정한 의와 지혜로움이 모직 주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전도서 8장

        미래를 알 수 없는 인생 속에서 사람은 무엇인가를 붙잡아야만 합니다. 하지만 해 아래에 온전한 것, 의지할 것이 있을까요? 왕의 통치도 재앙도, 죄지음과 기만과 칭찬, 보상과 억울함도 결국 모두 바람과 같습니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을 볼 수도 만질 수도, 그 섭리를 다 깨우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공허함 속의 인간의 부르짖음에 주께서는 응답하십니다. 주의 얼굴을 구하는 자에게 당신을 들어내십니다. 그렇게 나는 믿음을 얻었으나, 아직도 너무나 약한 믿음임을 내 삶이 증거합니다.

        마치 내게 지혜가 있는것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결과를 바라보고 하는 일들과 나타난 결과에 얽메인 채 좁은 시야로 판단하는 일들이 허다하고, 마치 나의 작은 선택 하나하나에 하나님께서 일희일비하실 것 처럼 부질없이 고민합니다. 기도의 응답, 서원, 확신, 선택, 소명, 또 수많은 것들을 이해하려고 지혜자처럼 밤낮 잠을 이루지 못하고 괴로워하기도 합니다. 세상의 삶에는 복잡함이 넘치나 진리는 단순한법, 나는 하나님을 기뻐하기 위해 지음 받았기에, 달려가는 발걸음에 망설임이 없도록 말씀과 기도로 돌아갑니다.


        전도서 9장

        "모든 사람은 공통의 운명을 갖는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선인이나 강도나, 깨끗한 자나 더러운 자나, 예배를 드리는 자나 드리지 않는 자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선인에게 임하는 일이나 죄인에게 임하는 일이나, 맹세하는 자나 두려워 맹세하지 못하는 자나 일반이다.(2장)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운명에 떨어진다는 것은 악한 일이다. 이로 인해 사람의 마음은 악으로 가득하고, 사는 동안 미친 짓을 생각하다, 결국은 죽고 만다. (3장)"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려고 들다보면 자아가 삶의 부조리를 견디지 못하고 미쳐버립니다. 눈과 귀를 막고 헛된 것을 쫓아갑니다. 어떤 이들은 신의 침묵을 신의 부재의 증거로 내세우며 공의의 하나님도 사랑의 하나님도 느끼지 못한 채 살다가 죽습니다. 하지만 선인이나 악인이나 하나님 앞에서는 일반이며, 그게 억울해서 울부짖으면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 사실에 납득하고 엎드리면 내 마음에 기쁨을 주십니다.  기뻐할 수 없는 중에 기뻐하는 나를 발견할 때, 과연 믿음이 나를 살린다는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당대의 의인이었지만 악마의 시험을 당해 참혹한 지경에 놓였던 욥이 생각납니다. 이해할 수 없고 억울한 상황속에서 욥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주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사 그 위대함으로 욥을 굴복시켜 다음과 같은 항복의 고백을 받아내셨습니다: "주님에 대하여 귀로 듣기만 했는데, 이제 저는 주를 눈으로 직접 보았습니다. 이제 제 자신을 경멸합니다. 그리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욥42:5-6)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매 순간, 인간의 공통의 운명 속에서 나는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믿을 것인가 믿지 않을 것인가. 



        전도서 11-12장

        아담이 에덴에서 쫒겨나 땀 흘려 소작하고 곡식을 먹었듯 모든 사람들은 죄의 소산을 먹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세상은 참 복잡한 곳입니다. 희노애락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고, 만사의 시작과 끝, 안과 밖, 자신과 타인, 행복과 불행이 마치 하나인것 같이 보입니다. 죄로 인해 은혜를 알고, 구원을 알므로 고난을 압니다. 오늘의 노력으로 인해 내일의 일을 장담할 수 없고, 모두 잊었던 과거의 죄가 언제 발꿈치를 물고 늘어질지 모릅니다. 이런 이치를 이해하기 전에 인간에게 주어진 짧은 인생은 끝이 납니다.

        자신이 주인되지 못하는 이러한 인생 속에서 인간은 계속해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만족할 것인가 슬퍼할 것인가. 무엇으로 부터 만족을 찾을 것인가, 또 무엇을 두고 슬퍼할 것인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속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어둠으로 자신을 가리울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든지 인간은 계속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며 죄를 지어가고, 또 죄에 대해 알아갑니다. 이 짧은 인생 동안에 먹는 음식이 나의 몸을 이루어 즐거움과 슬픔을 동시에 가져다 줍니다. 선한 것을 먹어도 악한 것을 먹어도 그렇습니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의 죄가 내 어깨에 지어지기도 하고, 사소해 보이는 나의 죄가 보다 큰 탐욕과 음란과 강포를 부추겨 이 세상을 더욱 더러운 곳으로 만들어가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쉴 새 없이 죄를 먹고 죄를 낳는 세상이 두렵습니다. 죄를 기뻐하는 나의 육신이 밉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허무합니다. 

        그러나 이 청년의 때에, 나는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마음으로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들을 기쁨으로 행합니다. 음식으로 인해, 실체없는 우상으로 인해, 어쩔수 없는 나와 세상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괴로워하기보다 나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만족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나는 성령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완전한 도래와 공의의 심판의 완성을 갈망하며 비통해 하는 것을 선택합니다. 숨 거두는 날까지 이렇게 하기를 원합니다. 나의 주님을 사모하며 나아가는 동안 육신은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주저 앉지만 나의 영은 곧이 가고, 영이 앞서가니 감성과 지성이 따라가며, 또 거기에 결국 나의 삶 전체가 이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차피 나는 드리고 싶은 만큼도 드려야 하는 만큼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나, 아버지께서는 이 상한 마음을, 성령께서 주신 이 믿음을 받으십니다. 이것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해서 법괘를 예루살렘으로 들여오는 다윗처럼 나는 육신을 곡식의 요제처럼 흔들어 생명있음을 찬양합니다. 이 모습이 남이 보기에 흉하고 우스꽝스럽고 아무 의미가 없는 것으로 보여도 나는 아버지 앞에서 춤을 춥니다. 예수께서 "천국이 가까이 왔다" 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해 아래 죄악의 땅 사망의 육신 속에 살면서 하나님 나라를 가까이, 마음 가득 느낍니다. 이 사랑을 전하며 살아야 할 줄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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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1)

    • 2017-05-22  민정기 목사  [신고]

      우와 지수~ 할렐루야! 주님 앞에 순수함, 인간과 은혜의 본질을 잘 이해함 그리고 표현력과 문학적인 소질도.... 참 많은 은사를 주셨네.
      주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그 은사로 섬길수 있도록.
      니 글에 감동 감동.... 나도 이렇게 잘 표현하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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