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에 보면 하나님앞에 숨길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신다.
결국 모든것이 하나님 앞에 다 드러나기 때문이고 다 보여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볼수가 없다.
그러나 얼마나 우리의 내면으로 죄를 짓는가 생각해 볼때 회개라는 그 방패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고 감사한지 눈물이 나온다.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정말 우리의 상상을 벗어난다.
우리가 마음에 음욕을 품고 지나가는 여자에게 음욕을 품어도 간음죄라고 말씀 하시기 때문이다.
결론은 이것이다.
너는 어자피 율법도 못지키고 죄를 지을수 밖에 없는 존재이니 예수님께로 나오라..
나는 용서의 하나님이고 내가 너희안에 거하면 너는 죄에서 해방 될 수 있다 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왜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거듭났는데도 죄를 짓고 내 마음에서 죄가 여전히 나올까...
그래서 성령충만 해야하고 성령으로 충만하면 죄가 없어지는것이 아니라 죄를 이길수있는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이 기쁨 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보았는가.
우리는 말씀으로 살려고 고통하지만 우리안에 기쁨이 솟아 나오는것을 경험하는가..
그것이 주안에서 기쁨이다.
그래서 고통과 기쁨은 같이 존재한다.
우리는 육신을 즐겁게 하지 않을때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할때 솔직히 나는 고통스럽다.
그러나 분명한것은 내 영은 기쁜것이다.
내 영이 기쁠때 질서가 잡힌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오는것이다.
우리는 내 영이 강건하기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가.
예배와 기도와 말씀을 읽는가 말이다.
내 영이 강건하기 위해서는 한 길이다.
기도와 말씀에 깨어있고 예배하는 우리의 삶 말이다.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이땅에서의 축복이외로 천국에서의 영원한 축복이 기다린다.
그것을 사모하는자는 이땅에 미련이 없다.
아직도 이 땅에서 내가 무엇을 이루려고 하고 싶은가..
주님은 우리 자체에게 관심이 있는것이지 어떠한 행위가 아니다.
내가 먼저 온전히 서도록 준비하자.
우리는 너무나 나자신의 영혼보다도 다른일에 분주하다.
주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한다.
정말 마지막 때임을 알고 자기와 하나님의 관계를 늘 재 정비하고 주님이 주신일에 힘껏 충성하자.
내가 주님께 집중하고 내 영혼이 주님을 향하고 예배에 우선순위의 삶을 살아갈때 내자녀도 내 남편도 아내도 가족들 그리고 내주의의 전도대상들도 모두 주님이 지키시고 키우시고 자라게 하시고 주님이 직접 열매로 인하여 주신다.
나는 황폐하고 다른일에 분주하지 말자.
먼저 그나라 그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모든것을 더하여 주시리라.
이 말씀을 날마다 상고하자.
환경이 어떻고 저떻고 변명하지 말자.
넌 내게 충성하라 그리고 나만 바라라 이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