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에 예수께서 나가사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사람이 많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눅5:27-30
오늘 새벽에 이 말씀을 들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레위라는 세리를 보시고 "나를 따라 오너라" 말씀 하실때 세리 레위는 모든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으며, 부자였던 레위는 자기 집에서 예수님에게 큰 잔치를 벌린다.
그가 초청한자는 자기같은 세리들과 소위 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오늘 새기에 목사님께서 보통 자기를 과시하기 위해 높은 위치의 사람들을 부르는데, 자기와 같은 세리들과 죄인들을 초청한 레위는 진정 예수님을 죄에서 구원하실 구원자, 메시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하시면서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시는데 큰 공감이 왔다.
맞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적어도 주님 앞에선 살인자든 간음자든 죄의 크기와 상관없이 다 죄인들이다.
그런데 교회에 오래다녔다는 직분자들이 말씀이 있다고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판단한다.
로마서에 보면 이런 말씀을 한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심판하는 일로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셈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그대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롬2:1(새번역)
로마서에 보면 바울이 1장부터 모든 죄를 나열한다.
음란 ,동성애, 불의, 악행, 탐욕, 악의, 시기 , 살인 , 분쟁, 사기, 적의, 중상모략, 미움, 불손, 오만, 자랑, 악을 꾸미는 모략군, 부모 거역자, 우매함, 신의가 없는자, 무정한자, 무자비한자..
이렇게 죄를 나열하면서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지 말라 라고 2장부터 말씀하신다.
결론은 복음을 아는자는 남을 심판하는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
오직 하나님만이 심판자라는것을 각인 시키고 있다.
오직 하나님만이 심판자 이시다.
오늘 새기에 목사님도 이 부분에서 많이 언급 하셨는데..
나 역시 나로 비롯하여 우리 사역자들과 직분자들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특히 자기보다 못하다고, 영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고 정죄하는가 평소에 누누히 묵상하던 구절 이었다.
우리가 말씀을 제대로 알았다면 정말로 겸손해야 한다.
인간은 애초에 창세기에서 아담이 죄를 지으므로 교만한 존재가 되었다.
내 중심으로 사는 자체가 교만이다.
언제나 내가 무엇을 하려는것을 밀어내어야 한다.
이것을 말씀 안에서 새기고 새겨서 나의 영육을 훈련해 가야한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빗나갈때 우린 비판하기도 하고 정죄한다.
그들의 모습을 주님께 가지고 와서 사랑으로 품으며 기도하는것 이라는, 구원받은 자의 신분을 우리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분명히 말하건데 아무리 하나님 중심의 올바른 가치관과 세계관과 교회관 이라도 잘못된 영혼들을 품지않고 주님께 기도로 올려드리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다 판단자고 심판자다.
분명히 주님이 미워하신다.
우리는 모든 상황을 주님께 올려 드려야 한다.
문제는 말할수 있지만 마지막에는 중보 기도로 마무리 해야한다.
이것이 영혼사랑이다
난 주님 앞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주로 들으려고 노력하고 대화하는 모든 상황속에서 기도제목을 찿아서 도고하고자 노력한다.
이것이 내가 살아야 하는 목적이고,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고 직분을 주신 목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정말 부족하지만 언제나 기도 노트에 기록해 놓는다.
누구나 사명이 있지만 구원 받은자는 누구나 기도의 사명이 있다고 생각한다..
난 원래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지 들어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변화된 것은 오직 주님의 은혜이다.
기도하면 사람들을 사랑하게 된다 .
싫었던 사람들도 주님 안에서 용서가 된다.
나의 부족함만 자꾸 보인다.
주님이 나의 부족을 자꾸 보여주시고 말씀하여 주신다.
예수님도 말씀하신다.
너희가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남을 심판하지 말아라.
너희가 남을 심판하는 그 심판으로 하나님께서 너희를 심판하실 것이요, 너희가 되질하여 주는 그 되로 너희에게 되어서 주실것이다.
어찌하요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는냐? 마7:1-3(새번역)
두려운 말씀이 아닌가.
우리는 자칫 잘못하면 남의 티를 보고 판단한다.
우리의 정신상태는 그렇게 지어져 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을수밖에 없는것이다.
나의 죄 때문에 말이다.
그래서 말씀을 주신것이다
나의 죄를 깨닫고 주님 안으로 들어와 살으라는 것이다.
내가 주님 안에서 살아야 우린 믿음으로 살수있다.
믿음이 뭔가.
그냥 주님을 믿는다고 믿음인가.
그것도 믿음이지만 지속적이 되기가 어렵다.
말씀이 내안에 고착되어야 믿음이 자란다.
믿음도 점진적이기 때문이다.
모든게 점진적이다.
말씀이 우리안에 없으면 우린 쉽게 교만에 빠진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는 성령 안에서 같이 가야한다.
정말 마지막때에 우린 남을 심판하지말고 더 깨어서 그들의 잘못이 보이면 먼저 나의 모습이 아닌가 집어 보면서, 그들을 품고 기도로 주님께 올려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할것이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라 판단하지 마라 감사하라 제시하면서 어떻게 해야 이런 마음을 품을수 있는지 잘 가르쳐 주질 못한다.
우리 입술로만 고백한다고 마음까지 고백이 되는게 아니다.
기도로 돕고 그들의 마음이 열리고 움직이도록 끊임없는 기도와 수고와 희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본다.
주님을 찬양한다.
더 주님께 온전히 쓰임받도록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