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4:12
이스라엘에 다녀오신 목사님께서 이번에 가서 은혜받은 부분을 말씀하시는데 어제 돌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말씀에 비유해 설명해주시는 은혜가 되었다.
이스라엘 날씨에는 건기와 우기가 있다.
건기에는 바짝 마르고 우기에는 비가 자주 온다고 한다.
그래서 목자들은 우기에만 일을 한다고 한다.
건기에는 돌무화과 나무를 돌보는데 그곳의 무화과 열매를 하나하나 바늘로 찌르고 올리브 오일을 바르는 작업을 한다고 한다.
그래야 과일이 맛이 좋다고 한다.
말씀에 비추어 돌무화과 나무는 죄된 심령의 의미가 있다고 하셨다.
누가복음에 삭게오는 성경에 뽕나무에 올라갔다고 하는데 뽕나무가 아니라 돌무화과 나무였다고 한다.
개역개정에는 돌무화과 나무로 되어있다.
삭게오는 세리장이었고 돈밖에 모르고 강팍한 마음을 가진 자였다.
그가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가 예수님을 만났다는게 신기하지 않은가..
예수님이신 목자를 만나서 말씀에 찔리니까 부드러워져서 내려온다.
그리고 그의 결단이 대단하다.
"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눅19:8
우리는 이렇게 말씀을 받으면 성령으로 이렇게 녹아져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말씀을 들어도 녹아지지 않는 마음은 내 마음이 강팍하다는 증명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바늘같이 찔리고 아프고, 어느 양 칼날보다도 더 날카로와 사람 속을 꿰뚫어 혼과 영을 갈라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놓기까지 하고 마음에 품은 생각과 의도를 밝혀 낸다고 하신다.
이렇게 말씀이신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어떤 살인마도 강팍한자도 변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우리 믿는자에게 교회가 필요한것은 목자의 음성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늘나라의 조그만 모형이 교회라고 생각한다.
이곳에서 믿는자가 모여 예배하고 축제의 분위기를 만들고, 서로 섬기고 사랑의 보금자리로 만들어 갈수 있다.
그리고 예배를 통하여 교회마다 향하신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어느 교회든지 중요하고, 이렇게 돌무화과를 바늘로 하나 하나 찌르며 아픔을 느끼는 목자의 심령이 있는 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심령을 가진자가 말씀을 전할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강팍한 마음들이 녹아지고 성도들이 변하는 것이다.
어제 목사님의 말씀이 인상깊다.
목자의 일은 말씀으로 찔러서 성령의 단맛을 내야하고, 양은 우리들이고, 돌무화과는 우리들의 심령이라는 것이다.
목자의 열심이 말씀을 찌르는것이라는 것이고, 결국 목자는 예수님의 열심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중요한 말씀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 자세로 말씀을 듣는가..
나이가 먹을수록 말씀이 중요하다고 더 여겨지고 말씀의 깊이와 높이를 더 깨닫기 위해 기도도 더 깊어져야 한다고 여긴다.
예수님은 늘 기도하셨다.
말씀이신 예수님도 늘 기도하셨다.
무엇을 의미하는가 ..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하는 사람들의 행보는 늘 말씀이 같이 간다.
말씀을 깊이 깨닫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을 많이 듣고 안다는 사람들의 행보는 어떨때 위험하다.
그만큼 말씀을 아는것과 행하는것의 차이라고 본다.
말씀을 아는것은 지식에 불과하다.
말씀은 알았으면 순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기도하는 자의 몫이다.
항상 주님은 기도하는자를 찾으신다고 믿는다.
말씀은 살아서 운동력이 있다고 하신다.
우리의 영과 혼과 육을 감찰하는 능력이 있다고 하신다.
정말 이런 능력의 말씀을 깨닫기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것이 아니겠는가.
아멘, 말씀과 기도에 늘 깨어있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