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3:12-14
오늘 새벽에 자신의 위치와 방향성에 대해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처한 위치를 잡기보다 주님을 향한 방향성을 잘 잡고 주님을 따르는 자의 신앙생활을 생각하면서
빌립보서의 이 말씀이 생각났다.
우리의 푯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 그 분만 바라고 그 분의 칭찬만 기다리는 지혜가 아닐까 생각했다.
야곱도 인간적인 야망과 약은 자의 모습이었고 다윗도 우리야의 아내를 범한 죄인이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처한 위치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했고 주님을 바라보고 방향성을 잘 잡은 믿음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사울 왕은 자신의 위치에서 백성들 앞에 왕으로 군림하기를 좋아했고 에서도 자기가 장자임의 위치에서 야곱을 죽이려고만 했다.
우리는 이런 구약의 사람들을 통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분명해진다.
아무리 인간이 보기에 추악한 죄를 저지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가 누구의 푯대를 향하여 나아 가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것을 발견한다.
모세가 구스여인을 취하였을때 백성들과 형 아론과 누이 미리암은 심하게 비난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철저하게 모세편에서 계셨고, 오히려 비난한 미리암에게 대표로 문둥병이란 최악의 저주의 병을 발생하게 했다.
모세가 간절히 기도하므로 미리암의 문둥병은 고쳐졌지만, 분명한 것은 인간적으로 부족하더라도 주님을 향하여 방향성을 분명하게 잡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만약에 삶의 방향과 목적을 잃으면 그것이 가장 슬픈일니다.
그것은 불신자의 삶과 동일하다.
바울은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옥중서신으로 성도들을 양육하고 선교했다.
우리도 이런 바울의 모습을 배워야한다.
감옥에 갇히더라도 찬양을 부를수 있고, 기도할 수있고, 문서선교도 할 수 있고, 감옥 안에서 전도도 할 수 있고 성경도 읽을 수 있다.
주님께 방향성이 분명한자는 어디서든지 주님의 일을 한다.
가면 갈수록 구원의 길이 어려워 보인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은혜를 잘 붙잡고 가지 않으면 힘든 세상에 우린 직면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같이 믿음의 경주를 하고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예수그리스도의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일은 정말 중요하다.
우리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시대에 살고 있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흉악한 사건들, 유혹하는 많은 인터넷들 여러가지 간음과 음란의 사건들, 즉 마귀의 형상들은 여기저기 확연히 드러나고 있고, 초스피드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스마트폰을 거의 다 소유하고 우린 최단 문명의 여유를 누리며 산다.
그래서 난 이 시대에 교회가 정말 중요하고, 교회가 노아의 방주라는 느낌이 온다.
정말 마지막때임을 실감하면서 말씀과 기도에 깨어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긴다 .
그래서 더 사도 바울의 서신서가 마음에 깊이 파고든다 .
언제나 나태해질것 같은 부분을 잡아주기 때문이다.
바울은 우리가 예수님을 붙잡는게 아니라 예수님이 우리를 붙잡았다고 언급한다..
그의 고백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되었다고 분명히 한다.
주님이 그를 붙드신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겸비하는 것이다.
바울는 다메섹에서 주님의 강권하심으로 변화되었다.
그래서 주님이 자신을 붙들고 계심을 누구보다도 아는 사도였다.
그래서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임을 아는 자였다.
이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나태하지 않고 더 부지런하게 하는 길인 것이다.
정말 바울같이 확실하게 변하고 주님이 나를 붙드심을 아는 분명한 하나님의 은혜가 날마다 나에게 머물기를 소망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