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에 11장에 보면 예수님과 마르다와 마리아와 그의 오빠 나사로 아야기가 나온다.
나사로가 죽은지 이틀이 지나서야 예수님은 나타나신다.
사람들은 나사로를 사랑하셨던 예수님이 오시니까 안타까와 했고 많은 사람들이 벌써 위로하려고 와 있었고 당황하고 있었다.
마르다는 예수님이 보이니까 급히 달려간다
"주님이 여기 계셨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않을건데 무엇이든 해주세요.." 하고 매달린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네 오빠는 살아날 것이다"
말씀을 하는데도 마르다는 살아난다는 의미를 알아 듣지 못한다.
난 이 장면을 읽을때 마다 오래전 나에게도 동일하게 주님의 음성으로 직접 물으셨기에 늘 마음이 처절해지고 생생해진다.
그리고 내가 주님은 재쳐놓고 마르다와 같이 봉사에만 열심을 부리던 모습이 기억나서 다시 울음이 나온다.
마리아도 울면서 달려온다.
"주님이 여기 계셨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겁니다"
그 곳에 위문 온 유대사람과 같이 울고 있을때, 예수님도 같이 비통해 하시고 괴로워하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결국 주님은 무덤에 있는 나사로에게 "나사로야 나오너라" 하고 그 한마디를 날리시니까 무덤에 사흘이나 죽어서 묶여있던 나사로가 뚜벅 뚜벅 걸어 나온다.
에스겔에서 마른 시체가 주님의 생기로 살아나듯이 말이다
정말 모두 예수님에게 집중하기 보다 나사로 살리는 일에만 집중하는게 주님은 더 괴롭고 비통하였을 것 같다.
예수님의 슬픔과 관중들의 슬픔은 달았다.
우리는 무엇을 슬퍼하는가..
나의 육신의 일인가..
아니면 내 영혼의 갈급함이고 주님과 친밀하지 못한 억울함인가..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생명이시고 부활이신데 그 예수님을 만나는 자체 보다도 모두가 기도의 응답에만 관심이 있고, 즉 나사로 살리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말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보다 기도가 응답되는 그 믿음이 더 기쁜 것은 아닌가 말이다.
우리가 아플때 그 병을 위해 기도하면 주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고쳐주시는 그 주님 보다, 병 고침이 나에겐 더 중요하고 기쁜 것이 아닌가 말이다.
우리는 가끔 주님을 기적만 일으키는 그런 마술사으로 전락 시킬 수 있다.
정말 우리의 병보다 주님을 사랑 한다면 우린 병고침 이후 더 주님께 봉사하고 더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하고 예배로 달려오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많은사람들이 기적을 경험했지만 예전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기는 커녕, 믿음마저 식어져서 영적으로 다운되어 가는 경우를 많이 본다.
다행이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면 좋겠는데 더 나빠지는 경우도 본다.
주님의 목적은 주님만 믿는것이고 우리의 영혼의 거듭남이고 성장이고 변화됨이다.
결론은 기적이 믿음을 만들어 내지는 못하는 것이다.
예전에 하나님을 잘 믿고 여러가지 은사가 나타났는데도 지금 교회도 안다니고 세상으로 돌아가 편안하게 사는 자도 정말 많다.
정말 안타까운 일들이 많다.
주님은 그런 자들을 그냥 내버려 두신다.
그러니까 결국은 마귀의 자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섭지 않은가..
그래서 잃어버린 영혼 구하는 일을 우리 믿는 자들게 맡겨 준 것이다
예수님이 바라시는것은 마르다에게 강조하신 것 처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다..
요11:25-26
"나사로가 죽은 것에 집중하지 말고, 너가 원하는 것이 응답되기를 원하지 말고, 나를 믿어라, 생명이고 부활인 나에게 집중하라" 인 것이다..
난 그것이 예수님을 비통하게 하고 슬프게 하셔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믿는다.
많은 유대인들, 마르다, 마리아가 나사로 때문에 슬퍼하는 것보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그 믿음을 그들에게 보시기를 원했다고 생각한다.
주님은 기도응답보다 우리가 주님께 집중하고 믿는 것과 우리를 정말 사랑 하신다는 것과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게 목적이시다.
우리의 진토를 지으신 하나님은 우리를 꿰뚫어 보신다.
우리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세상은 어두움이다.
예수님 없는 곳은 영적으로 다 어두움이고 죽음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빛이시다.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은 생명의 빛 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는 사건이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명백하고 분명하게 보여 주시는데도 제자들은 그때도 긴가민가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질병도 사망도 이기시고 예수님 자신이 부활이요 생명임을 담대히 드러내는 메시야 사역이라고 본다.
우리는 사망을 이기신 예수님만 소유 하고 있으면 모든 것을 다 이길 수 있다.
육신의 모든 것도 이길수 있는 힘이 생긴다고 본다.
모든 것은 그래서 나의 믿음의 문제이고, 내가 누구을 믿고 보고 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3년동안 예수님을 졸졸 따라다닌 제자들도 성령님이 오신 후에야 모든 것을 알게된다.
그들은 모두 철저하게 변화되어 다들 주님을 위해 헌신하다가 순교하였다.
그만큼 예수님 옆에서 같이 사역하던 그들에게 큰 충격 이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결국 그들 모두 나사로와 같이 잠들었던 영혼이었던 것이다.
성령께서 제자들안에 오시므로 그들의 영혼들이 주님의 빛을 나타내는 능력의 용사들로 변했고, 세상을 밝히는 빛의 용사들이 되어 주님을 위해 살다가 순교하였다고 본다.
오직 성령의 힘과 하나님의 영광만이 우리의 삶을 힘있게 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성령의 힘, 예수님을 붙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세상에서 부유했는가 .
그들의 삶은 비참하고 가난했다.
그러나 저들의 영혼은 참으로 부유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후폐하나 내 영혼은 날마다 새롭게 되는것 말이다.
날마다 말씀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바램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믿음이 중요하다 .
내가 무엇을 기도하고 애쓰던지 주님이 주시는 것에 기뻐하고 주님만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더 기도에 집중하게 되는 우리의 모습이라면 정말 주님의 사람으로 온전한 사람이 되어 가는게
아닌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