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기쁨에 대해 깊히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난 언제나 내 안에 주님의 기쁨이 내 안에 거하는가 늘 묵상하면서 혹시나 우울하면 주안에 거하려고 노력하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기쁨이 내 안에 머물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기쁨과 다르기 때문이다.
난 이것이 믿음의 절정이라고 본다.
하나님의 기쁨은 그분의 속성이 우리 안에 움직일때 일어난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고 힘이 되신다.
예수님은 이것을 참 중요하게 여기므로 우리를 위해 당부하셨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에게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요15:11
비록 겉으로는 어렵고 비참하고 아무 것도 안 일어날지라도, 우리에겐 하나님이 주신 기쁨이 있기에 항상 평안 할 수 있다.
그러한 기쁨은 우리에게 어려움과 고통이 여전히 있어도 우리에게 힘을 준다.
이러한 기쁨이 우리 안에 있을때, 우린 비로서 믿음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다고 본다.
예수님의 기쁨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었다.
그러면 우리의 기쁨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우리가 예수님의 기쁨을 누린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은 날마다 기적이다.
우리가 거듭나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창조가 조성되고 이루어 질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속성이 나타나고 참 기쁨을 누릴수 있게 되기에 그렇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의 희생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희생을 치루신 것 같이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치룰때 주님의 기쁨을 누릴 수가 있다.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16:24
내가 세상에서 이 말을 하옵는 것은 그들로 내 기쁨을 그들 안에 충만히 가지게 하려 함이니이다 요17:13
주님은 우리 안에 오셔서 나의 실체를 드러내시고 나를 완전히 창조하셔서 주님의 속성으로 바꾸신 뒤 하나님의 뜻에 맞게 구하길 원하신다
그때 우린 충만한 기쁨을 누린다고 본다.
그래서 분명히 위로부터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만약에 거듭난 자에게 주님의 기쁨이 없다면 다시 자신의 믿음에 대해 고민해 보아야 한다.
거듭난 사람은 주님의 구속이 나에게 이루어지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성향을 넣어 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므로 늘 주님의 기쁨이 충만하셨다.
그런 하나님의 인격을 우리에게 주시고 동일한 기쁨을 우리가 누리길, 주님은 원하시고 기도하신 것이다.
이런 주님의 기쁨이 우리를 전도하게 하고 영혼들을 살리고 예배하게 한다.
우리의 삶에 주님의 기쁨이 있는 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의 생명은 예수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세상은 이것을 모르기에 이렇게 자기 뜻을 실현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만약 나의 뜻을 실현하려고 한다면 주님과 나와는 상관이 없는 자이다.
주님은 그런 사람은 도울 수가 없다
주님은 주님의 뜻을 우리 거듭난 자를 통해 이루시기 위해 우리를 구속했기 때문이다.
즉 자기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자에게는 주님이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성경말씀을 많이 알아도, 죽어지고 낮아지지 못하는 것은, 주님의 뜻보다 자기의 뜻을 이루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예민하고 까다롭고 말씀을 가르킬때도 영혼들을 시험들게 한다.
그리고 결국 실수를 저지르고 주님과 사람들에게 실망을 준다.
주님은 베드로같이 급하고 돌발적인 성격의 사람에게 아주 조용하게 친절하게 말씀하셨지만, 베드로는 듣는 즉시 회개했다.
주님의 말씀 속에서 심판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님 자체가 심판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심판임을 알때 정신 차리게 된다.
많은 사역자가 예수님이 심판임을 모르기에 죄를 짓고도 모르새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요9:39
우리 안에 제거 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말씀이 왜 심판인가.
우리 안의 나의 속성들을 제거하기 위함은 예수님이 심판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나의 자아의 모습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고 고통스럽고 부끄럽기 까지 하다.
이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그리스도 인의 모습이다
주님은 조용히 임재하시는데, 우리는 죄와 행동으로 인해 심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거듭난 자의 당연한 모습이다.
주님은 우리의 행위가 주님께 드러나길 원하신다.
그것을 십자가로 통과해야만 비로서 우리의 속성이 주님의 인격으로 바뀌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옳다고 주장하고 변호한다면 우린 변화 될 수가 없다.
주님을 바라 볼 때마다 우리가 심판을 느끼고, 주님의 속성이 우리를 움직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