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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원을 완성하고 있는가

      날짜 : 2019. 03. 10  글쓴이 : 서윤정

      조회수 : 1342
      추천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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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세는 주변을 살펴서 아무도 없음을 보고 
        그 이집트 사람을 죽인뒤에 시체를 모래에 
        파묻었습니다. 
        출2:12 (쉬운성경) 

        출애굽기는 시작에서 부터 이스라엘 지도자 
        모세의 탄생이 나온다. 
        모세의 생애, 그가 어떻게 태어났고 
        성장했으며 훈련을 받고 지도자가 되었는가의 
        성장 과정을 출애굽기에서 자세히 보게 된다. 

        모세를 보면 어머니 요게벳의 지혜로 말미암아 
        이집트 공주에게 가게 되고 유모로서 요게벳이 
        직접 모세를 양육하였다는데 숨막히는 
        장면들을 볼 수 있다.

        이런 모든 것은 요게벳의 믿음이었고 
        드디어 왕궁에서 그녀가 직접 젖을 먹이며 
        모세를 히브리 사람으로 철저하게 양육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숨은 의도이고 계획이었다. 

        그때 이집트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과 
        국가자체를 몰살시키려 하는 비참한 시기였다. 
        이스라엘 남자아이가 태어나자 마자 
        학살하던 최악의 시절에 모세는 태어났다.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택한 모세의 
        어린시절과 성장시절을 보면서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오묘한 계획을 엿볼 수 있다. 

        모세는 이스라엘 구원을 위해 특별히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신 인물임에 분명하다. 

        모세는 히브리 유모 즉 친모였던 요게벳의 손에서 
        젖을 먹으며 자랐다.
         이것도 하나님의 오묘한 계획이다. 

        분명히 요게벳은 모세를 몽학 선생으로서 
        어머니로서 철저하게 히브리인으로 인식시키고 
        양육하였을게 분명하다. 
        그의 애국심을 보면 알 수 있다. 

        공주의 아들인 덕분에 화려하고 편안한 
        궁중생활을 하였지만, 히브리 사람으로서 
        히브리 사람이 노예로 신음하고 
        고통을 당하는 모습을 보며 갈등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과 세상, 이스라엘과 애굽.. 
        과연 어디에 속해야 하나, 
        청년인 모세는 갈등하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히브리서에 보면 이렇게 기록한다. 

        모세는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더라 
        히11:24-25 

        어쨋든 이스라엘 사람을 학대한 애굽 인를 쳐 죽인 
        모세의 행동은 고난당한 민족의 아픔과 신앙의 열정보다도 
        분명히 감정에 복받쳐 나온 혈기였고 살인 행위였다. 
        이것은 아직 모세가 신앙적으로 덜 성장한 
        미숙한 상태를 보여준다. 

        물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지만, 
        모세는 분명히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한
        미숙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우리도 이렇게 훈련 받지 못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눈보다 사람들 시선을 의지 할 때가 많다.
        그렇지 않은가.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있는가.. 
        아니면 보이는 사람들과 보이는 현실을 두려워 하는가.. 
        이것이 믿음의 크고 낮음, 성숙과 덜 성숙함을 
        말해 준다고 본다. 

        모세는 앞으로 큰 일을 하기 위해 더 많이 신앙적으로 
        인격적으로 성장하고 훈련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음을 
        모세의 청년기에 보여준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야곱도 많은 선친들이 처음부터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은 부르시지 않으셨다 . 
        그들 모두 부름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연단을 
        받아들이고 나아갈때 믿음은 자라고 
        주님이 쓰시는 사람이 된다.

         모세의 미디안의 40년의 광야 시절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고, 자기성찰의 시간과 믿음의 연단의 
        과정임을 말해준다 

        우리는 너무 연단의 시간이 길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우리에게는 지금 40년이란 기간이 연결되지는 않지만, 
        분명히 우리에게도 신앙의 연단의 기간이 있다고 본다. 

        그런 연단을 거치는 것이 싫어서 자기 중심에서 
        거부하는 사람들은 혼자서 영적생활 한다고 
        홀로 자기 충만한 자도 많고, 미혹에 빠져 자기 말이 
        하나님 말인양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교회를 자주 옮겨다니는 사람들의 현상이다. 
        예전에 내 주의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 
        처음엔 정말 믿음이 휼륭해 보인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모든 사람들의 허물을 캐낸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엔 이러하다고 오히려 가르친다. 
        항상 문제를 말하지만 정작 자기 문제는 
        전혀 보질 못하고, 자기 자아는 죽어지지 못한다. 
        그야말로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치열한 판단이다. 
        이럴때 참으로 답답하고 속이 터진다. 

        어디서나 우린 인내하고 참고 기다리는 연단이 
        있어야 한다. 
        사람들을 바라보면 누구나에게 허물이 있다. 
        그런 허물은 마귀가 더 세세히 잘 드러낸다. 
        그래서 마귀에 잡힌 사람들은 사람들을 판단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허물을 드러내려고 
        오신 분이 아니고 덮어주시고자 오신 분이시다.

         왜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때 소제로 
        고운가루를 드렸는가 .. 
        우리의 성품이 고운 가루가 되어져 성령의 기름으로 태워 
        주님께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시기에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불로 나의 성격을 태워야 한다. 
        왜 연단이 필요한가... 
        모세같이 주님이 우리를 쓰시기 위함이다. 

        나의 성품, 신앙, 인격등은 분명히 십자가에서 
        연단되어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기를 
        주님은 원하시기에 그렇다.. 

        모세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철저하게 
        주님은 순종을 요구하셨고, 
        하나님께서 혹독하게 다루셨다. 
        결국 미르바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일은 여호수아에게 맡긴다

        우리는 모세에 부분에서 머무르면 안된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으면 구속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즉 여호수아의 길로 가야 한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구원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살아갔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 그곳에 거주하는 
        일곱족속들을 물리 쳐야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땅을 분배 받았지만 
        일곱족속들을 다 쫒아내지 않는다. 
        그 사람들에게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서 
        자기의 종으로 식모로 부려먹는다 

        그것이 올무가 되어 또 하나님께 죄를 짓는다. 
        이것이 나의 우상이다. 
        내 안에 있는 높아진 나의 우상들을 물리치도록, 
        영적 싸움을 믿음으로 해야 한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전투이다. 

        여호수아 같이 최선을 다해 가나안의 땅에 남아있는 
        잡다한 것을 거부하고 물리치고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죽을때 마지막으로 명령한다. ...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24:15 

        우리는 모세에게 머물지 말고 여호수아의 구원에 이르기까지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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