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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태인 집중 연구 - 토론토 주사랑 교회

      날짜 : 2011. 01. 03  글쓴이 : Joosarang

      조회수 : 9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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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태인 - 토론토 주사랑 교회

        Contents

        1 개요

        2 유대인 박해의 역사

        3 이스라엘

        4 현대의 유대인

        5 여담

         

        1 개요

        BC 2000년경 메소포타미아에서 팔레스티나로 이주한 이스라엘 민족. 유태인이라고도 한다. 조롱 섞인 별명으로 랍비라고 부르곤 한다. 사실 랍비는 유대교에서 말하는 선생 중의 선생이란 뜻의 말이다.

         

        사실 구분은 너무 애매하다. 디아스포라로 씨가 세계로 퍼져 사회에 뿌리박혔기 때문에 단순히 어떠한 특징만 가지고 사람은 유대인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덧붙여 디아스토라 유대인이란, 바빌론 유수 이후 팔레스타인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살게된 유태인들을 일컫는 .

         

        사실 정확히 하자면 유대인집단에서 스스로를 다른 민족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하는 기준은 다름아닌 유대교 믿느냐 아니냐 한가지 뿐이다.
        물론 피부색같은 특징으로 인한 차별이나 배척이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순간 민족이나 혈통같은건 무시하고 "우리는 조상을 모시는 가족"이라는 개념으로써 받아들여준다고 한다. 속인주의 속지주의 비할만한 속敎주의라고 생각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유대인의 외모가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의 예와 같은 백인의 모습으로써 대변되기에 그냥 백인계열의 민족으로만 알려졌을 유대인이라는 민족은 어디까지나 아랍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중국 황인종[1]이나, 흑인중에서도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또한 소수 존재한다.[2]

         

        또한 유대인 중에서도 우리가 제사도 지내고 점도 보고 교회에도 가고 하듯이 근본주의적인 전통을 고수하며 살지 않고 적당히 다른 종교나 문화도 누리며 평이하게 살거나 혹은 개종하여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도 편의상 유대인으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랍비들은 인정 못할 .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은 유대인으로 인정이 된다. 모계사회이다. 그러나 모계사회라고 해서 여성의 지위가 높은 것은 아니며(모계사회 항목 참조), 실제로 유대인 사회에서도 여성의 지위가 높지는 않다. 오히려 유대인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가부장적이며, 전통적인 유대교 풍습에서 여성은 아이 낳고 혈통 보존하는 기계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명한 유대인 농담 하나로 이런 것이 있다. 어느 유대인 여성이 세계적인 업적을 세워 상을 받는 자리에서, 객석에 앉아 있던 그녀의 어머니가 옆사람에게 말했다. " 자랑스러워요. 애의 오라비가 의사이거든요.

         

        아버지가 유대인, 어머니가 타민족이라면, 유대사회의 심사를 받아 유대인인가 아닌가 판단하게 된다[3]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로 유대민족에도 갈라져 서로 구분되는 다수의 분파가 존재한다. 이중 다수의 구성비율 혹은 정통성을 유대인을 대표하는 분파는 아쉬케나짐, 세파르딤, 미즈라힘의 셋인데, 이중 세파르딤과 미즈라힘은 같은 계열로 간주하는 시각도 있다. 아쉬케나짐은 주로 동유럽에 거주하던 유대인들로, 유대인 백인과 가장 유사하며 흔히 우리가 유대인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세파르딤은 이베리아 반도(스페인 포르투갈) 중심으로 북아프리카 등지에 퍼져있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미즈라힘은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일대에 사는 유대인들을 말한다.

         

        이중 아쉬케나짐의 기원에 대해서는 팔레스티나에서 살던 민족이 아니라는 설이 있다. 흑해와 카스피 연안의 국가 하자르(khazars) 국교를 유대교로 정한 나라가 멸망하자 국민들이 동유럽에 대거 유입되어 아쉬케나짐이 되었다는 설로 하자르 기원설이라고 한다. 아서 쾨슬러라는 어느 영국 작가가 주장한 설인데, 역사적 기록이라든가 유대인 교회당 같은 구체적인 증거가 나오지 않아서 신빙성이 부족하다는 반박이 있어 논쟁이 뜨겁다. 그러나 아쉬케나짐 반대파의 경우 이론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는데, 일례로 세파르딤과 아쉬케나짐의 반목이 심해졌을 세파르딤 쪽에서 "가짜 유대인은 흑해로 돌아가라!" 까대기도 했다.

        2 유대인 박해의 역사

        여호수아 모세 사후에 이스라엘의 지파를 지휘하여 가나안 일대를 점령했고, 기원전 10세기경엔 익히 아는 다윗 왕과 솔로몬왕의 시대로 이스라엘의 전성기였지만, 그후 남왕국 유다와 북왕국 이스라엘로 분열하여 쇠락과 부흥을 거듭하던 아시리아(이스라엘) 신바빌로니아(유다) 패망당하기도 했으며, 결국 기원후 73 마사다 요새에서 로마군에 의해 열성당원들이 전부 전사 혹은 자결하고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4][5]

         

        중동이나 유럽으로 퍼졌는데, 대부분 이민한 사회에 녹아들어가지 않고 자신들 고유의 전통과 종교를 지키면서 살아갔기 때문에 배척을 당했다. 제대로 일조차 구하지 못했기에 대부분 금융업에 종사했고, 이는 고리대금업을 금하는 기독교 사회 안에서는 더욱 배척받고 미움받는 원인이 되었다.[6]

         

        더욱이 기독교인들은 유대인들을 '예수 죽인 민족'이라는 오명하에 그들을 증오하고 멸시했다. 하지만 예수와 열두 사도들은 유대인들이었으며, 예수가 구원의 대상으로 삼은 역시 유대민족이었다. 십자군 전쟁 때도 지나가는 길에 유대인들이 있으면 그냥 쳐죽이고 재산 빼앗는 일은 예사.베니스의 상인 등장하는 사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 또한 이런 증오가 투영된 인물이라고 있다. [7]

         

        이슬람권에서는 박해가 덜한 편이라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이야기다. 애초에 이슬람교 발생 초기에 유대인 도시 하나를 개발살내고 약탈한 재화로 메카 반대파와 싸울 재원을 마련한 적도 있을 정도니...[8] 그래도 능력이 출중하면 일국의 고위 관료까지도 노려볼 했을 정도로 풀어준 시기도 있다. 무렵의 이슬람권은 유럽권의 암흑시대와 비견되는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

         

        사실 집시라든지 쿠르드족같은 예를 봐도 있듯, 단지 나라없는 떠돌이 민족이기 때문에 박해당한 것이지, 예수를 죽였다던가 하는 일종의 핑계일 .

         

        유대인에 대한 박해는 홀로코스트 참조하자. 인간의 잔혹성을 있다. 아이러니한건 나치는 유대인이 수전노에 고리대금업자라는 이미지로 선전했는데 나치 집권후 그런 소리 들을 만큼 부자인 유대인들은 유럽을 떠났지만 돈도 부족하고 힘없던 유대인들은 남아서 수용소로 끌려갔다.

         

        18, 19세기 들어 "이성의 시대" 되자 유대교와 유대인에 대한 탄압은 감소했지만, 현대엔 개신교 일부와 나치류의 정신병자들이 유대인을 갈구고 있다. 레파토리도 똑같다.

        3 이스라엘

        하지만 온갖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 특유의 생명력으로 나름 상업과 금융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 불편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유럽사회에 붙어 살던 , 아돌프 히틀러 등장해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게 되자, 결국 유대인들은 자신의 나라를 강하게 원하게 되고, 결국 1948, 그들의 영토였던 팔레스티안 땅을 2000년만에 수복하게 된다.[9]

         

        자세한 사항은 이스라엘 항목으로...

        4 현대의 유대인

        세계 합산해봤자 1,000만명을 넘는 적은 민족이 세계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것은 역시 미국에 사는 유대인들 때문일 것이다. 미국 인구의 2% 차지하는 유대인들은 그들 특유의 수완으로 경제, 언론, 문화, 예술 각계에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앉아 있으며, 때문에 비유대계 백인들의 멸시와 증오를 받기도 하고, 각종 음모론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그런것과는 관계가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그들은 대부분 중산층 관리직이며, 박해 받은 역사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성향이 진보적이다. 2008 미국 대통령 선거의 경우,민주당 버락 후세인 오바마 찍은 유대인은 무려 80% 이상이었다. 이렇게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미국의 유대인 랍비와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에 대한 군사행동을 비난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뉴욕같은 가면 진짜로 검은 입고 수염은 허리에 닿고 안식일에는 불도 안켜는 골수 유대인들이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일부고 대부분은 평범하고 튀지 않게 살고 있다. 말이 유대인이지 유대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많고, 기독교 풍습을 따라 크리스마스에 트리를 세우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대중매체에서는 십원짜리 하나만 던져도 서로 죽을 때까지 싸우는 수전노들이나 미친듯이 공부만 하는 범생이로 묘사된다. 전자야 인종차별 가까운 편견인데, 후자는 어느정도 사실. 미국유명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유대인 비율은 인구대비 압도적이다.

         

        유럽에서는, 특히 동유럽에서는 도시마다 존재했던 유대인들만의 격리구역인 '게토'에서 오래 살아왔기 때문에 많은 근친혼이 이루어져 유전병의 발생 빈도가 상당히 높다고 한다. 근친상간 항목 참조.

        5 여담

        유대인은 이미 3000 훨씬 전부터 있어온 고대민족인데다가 당시로서는 인구가 밀집되어 많이 살았던 민족이기 때문에, 만약 땅에서 계속 살아왔다면 지금쯤 2억이 넘는 대민족이 되었을 거라고 한다. 만약 그랬으면 지금의 이스라엘 땅으론 살기에 어림도 없을 .

         

        꾸란 의하면 예언자로 보내졌던 예수 오해하고 죽인 죄로 디아스포라로 퍼져 살게 되었다고 한다.

         

        나라 시대에는 장안에도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더불어 1054년에는 송나라에서도 유대인 학살이 벌어졌다고 한다. 동남아 각지에서도 이들은 살아가는데 6망성을 상징하는 걸개를 매달고 대대로 살아오면서 지역 대세인 불교나 지역 토속신앙을 반목했기에 여기서도 오랫동안 시달림을 받아왔다. 이들도 이스라엘 건국에 기뻐하고 이스라엘로 갔으나 되려 동남아 생활이 낫다는 엄청난 차별을 받으며 이스라엘에 치를 떨고, 동남아로 돌아와 그냥 예전처럼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이는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 에티오피아 살던 흑인계 유대인들도 이스라엘에서 한번에 대대적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으나 ,백인계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받아가던 이들도 결국 에티오피아로 돌아가는 이들이 많았다.

         

        ----

        [1] http://en.wikipedia.org/wiki/Kaifeng_jews 항목 참조.
        [2] 대표적인 경우가 에티오피아계 유대인들. 사실 족보를 거슬러가다 보면 쫒겨나 떠돈 끝에 지역까지 흘러들어간 진짜 유대인이 그들의 조상인 경우가 거의 전부임을 있음.
        [3] 보통 랍비를 통해 심사받는다. 유대인이 같은 유대인인 누군가에 대해 험담을 때의 단골 레퍼토리가 어머니가 유대인이 아니라는 소문이나 (남성의 경우) 비유대인 여성과의 사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소문이다.
        [4] 로마를 상대로 번째로 독립전쟁을 벌였다가 번째와 마찬가지로 개털리고 마지막 보루였던 마사다 요새에서 저항하다가 로마군이 총공세를 펼치자 독립군 전원이 자결하였다. 이후 로마는 이상 유대인들이 독립운동을 하지 못하도록 유대인들을 그들이 살던 지역에서 모조리 추방하였고, 이는 기원후 123년까지 지속되었는데, 이를 디아스포라라고 한다.
        [5] 유대교 랍비들은 오늘날 유대인들의 전통과 정체성은 디아스포라 이후에 확립되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유대교의 기원을 토라(Tora : 유대교의 경전. 기독교의 구약성경은 토라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 아들 '이삭'으로 보는 외부의 시선과 달리 오늘날 유대교의 기원은 기원후 70년대 디아스포라 이후라고 말할 정도.
        [6] 기독교 사회였던 중세 유럽에서 유대인은 농사도 지을 없었고, 조합에 가입할 없어 상업도 공업도 없었다. 그러다보니 유대인들이 있는 일은 고리대금업 밖에 없었다.
        [7] 현재 재정적인 문제로 이스라엘로 돌아가지 못하는 유대인들을 지원하는 단체의 상당수가 신교 계열이다. 종교 개혁 이전에 구교에서 성서를 읽는 행위 자체를 민간에게 허락하지 않았기에 유대인들에 대한 정치적인 증오가 종교적인 옷을 입은 뿐이다. 실제로 유대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분리시킨 신약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할 것과 그들을 향한 God 사랑과 계획이 있음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교리적으로나 성서적으로나 기독교인이 유대인을 적대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차라리 경제적, 정치적인 이유에서 답을 찾는 것이 빠르다.
        [8] 하지만 원인을 제공한 유대인들의 탓도 적지않게 있다. 당시 무함마드가 힘겹게 메카 반대파들과 싸울 유대인들을 일단 아군으로 받아들여주었지만(이슬람교의 교리상 유대인들을 굳이 적으로 이유는 없었다), 힘겹게 이기고 나니까 유대인들이 적들과 내통했다는 사실이 들통나 무함마드는 유대인들을 적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었다.
        [9] , 정확히 말해서 이스라엘 건설주장은 히틀러의 학살이 있고서야 대두된건 아니다. 18세기경부터 대두된 이른바 '시오니즘', '유대 민족의 생존을 위한 독립국가 수립' 주장이 시초. 그러나 히틀러의 학살이 있기 전에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시오니즘은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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