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제대 의대 재학 시절 기독교를 접한 그는 일찌감치 의료 선교를 마음먹었다. "무엇을 위해 사느냐. 돈이냐 명예냐. 나는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는 것이 그의 결심이었다.
군의관 제대 후 1년 6개월간 선교사 훈련을 마치고 2002년 6월 6일
방글라데시로 갔다. 큰아들 준용(15)이 여섯 살, 막내 주영(10)이 한 살 때였다. "어렵고 그늘진 곳의 이웃에게 더욱 간절한 의술을
베풀겠다"는 박 원장 뜻에 부인 이현영(44)씨도 군말 없이 따랐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서 북동쪽으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인 가지뿔 지역. 그는 이 지역의 꼬람똘라 기독병원에서 외과 의사로
일을 시작했다. 도착한 뒤 2개월쯤 둘째 아들 주영이 머리에 종기가 나 열흘에 걸쳐 직접 수술을 하기도 했다. 박 원장은 물론 온 가족이
풍토병을 앓았다. 그래도 그는 '인술의 꿈'을 접지 않았다.
꼬람똘라병원은 30병상 규모로 크지 않다. 이 병원은 가난한 현지인들을
위해 진료비를 현지 병원의 10분의 1 수준만 받는다. 돈이 없는 환자는 무료다. 박 원장은 "진료를 받고 나서 환자가 바나나 1개를 내밀거나,
손바닥을 내 발등에 댔다가 자기 이마에 붙이는 방글라데시 식 인사를 할 때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했다.
작년 10월 전신 화상을
입어 턱과 가슴이 붙어버린 여섯 살 소녀 다만나도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당시 그의 어머니가 들고 온 돈은 우리 돈으로 200원이었다.
다만나의 어머니 아잇샤씨는 "이렇게 치료받는 것이 꿈과 같다. 아기가 화상을 입고 9개월 동안 돈이 없어 진료를 못 받아 너무 힘들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타국에서 의술을 펼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박씨가 처음 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원 수술실에는 수술 침대나 장비가
없었다. 간호사들도 수술 장갑을 어떻게 껴야 하는지 몰랐고 수술용 차트도 없었다. 현재도 이 병원은 수술 도중 정전이 되기도 한다. 비상
발전기를 돌리지만 가끔 이마저도 동작이 안 될 때가 있다.
박 원장은 이제 빠라텍 지역의 한 초등학교를 인수해 아이 100여명을
가르치는 교육 사업을 펼치고 있다. 가난한 아이 20여명을 모아 양육하는 글로벌 호스텔도 운영하고 있다. 고(故) 이태석 신부의 인제대 의대
후배인 박 원장은 "꼬람똘라병원에 앰뷸런스와 응급 의료 시스템을 갖추고 글로벌 호스텔을 100명 규모로 키우는 꿈을 위해 더 힘을 낼 것"이라
했다.
이태석 봉사상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병원과 학교를 세워 봉사활동을 한 이태석 신부를 기념해 만든 상이다. 이태석 신부는 영화
'울지마 톤즈'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출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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