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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새로운 종교법과 박해
베트남은 여전히 공산주의자이지만 과거와는 달리 다양한 종교와 종교의식이 생겨나고 성장하고 있다. 정부에서 추계하는 종교인구보다 훨씬 많은 인구가 특정 종교를 믿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종교 관련 제도는 옛시절 그대로 종교에 대해 다양한 제약을 가하고 있고, 국가에서 종교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여실해 보인다. 일부 조항들은 매우 가혹한 내용도 담고 있다. 특히 카톨릭과 개신교는 그들의 체제에 위협이 되는 서구사회의 종교라는 인식이 있어서 더욱 적대적으로 대하고 있다.
다이 도안 켓이라는 용어가 있다. 영어로 번역하면 위대한 국가의 단결 이라는 뜻이 된다. 이는 특정 종교를 베트남의 전통과 문화 속에 충분히 수용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관대하게 포용할 것이냐, 아니면 적대적인 문화로 간주할 것이냐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다이 도안 켓은 그 기준 자체가 애매하다. 이는 국가의 정체성의 기준일 수도 있도, 일상적인 문화, 특히 정신문화의 기준일 수도 있다. 이 기준을 놓고 볼 때, 어느 정도면 긍정적으로 볼지, 어느 정도면 받아들일 수 없는 범주가 되는지도 보는 사람에 따라 매우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기준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특정 종교는 우대 받을 수 있지만, 특정 종교는 박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재 존재하는 법률도 그렇고, 지금 새로 만들어지는 법률도 그렇고, 이러한 기준 아래서 제약을 가해야 할 종교와 우대해야 할 종교를 정하게 되어 있다. 또 어느 종교에서 나타는 어떤 사소한 점을 크게 부각시키고, 침소봉대하여 해석함으로써 박해의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오히려 종교에 대한 법률이나 기준은 그 것이 인권이나 양심의 자유 같은 보편적인 가치에 부합하는가를 평가하여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 베트남의 종교 문제를 놓고 서방의 외교관들과 베트남 당국, 그리고 인권운동기관들이 토론하고 때로는 부딪히기도 할 때 가장 큰 논점은 베트남의 전통가치와 보편적 인권가치와의 대립이었다.
새로 만들어지는 종교관련 법률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다이 도안 켓이 법률의 매우 중요한 원칙이 되고 있다. 그래도 그 제정 과정은 나름대로 민주적인 절차를 따르고 있다. 정부에서 작성된 초안은 사회의 다양한 집단, 심지어 일부 종교단체에까지 보내졌고, 그들의 견해를 청취하는 절차를 밟아 가고 있다. 법률보다는 하위 개념이어서 큰 주목을 받고 있지 않지만, 상당히 주목해야 할 또 다른 문서가 있다. 지난 2월 12일에 작성되어 발표된 총리 결정 06/2015/QD-TTg라는 것이다. 이 문서의 제목은 “내무부 산하 종교사무위원회의 조직과 기능, 책임, 권한에 대한 규정집”이다.
이 두가지의 문서 내용을 살펴 보면 베트남의 개신교의 앞날은 여전히 밝지 않아 보인다. 이 두 문서를 보면 베트남은 여전히 종교 그 자체를 극복해야 할 사회 문제 혹은 국가 안전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요소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관료주의의 색채가 매우 강하고, 의회의 존재가 미미한 공산당 1당 국가에서 당국이 이런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결국 사회 분위기 전체가 종교에 대해 적대적일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고 종교사무위원회의 권한과 기능이 종교를 억제하는 쪽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총리결정이라는 문서는 종교사무위원회의 권한이 종교계를 매우 불편하게 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긍정적으로 볼 부분도 없지 않다. 앞서 말했던 정부는 새로운 종교 관련 법률을 만들면서 그 초안을 각계 각층에 공개하고 그 견해를 청취하고 있는데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종교는 법률로 다룰 영역이나 문제가 아니었다. 40년 쯤 전에 공산당이 남베트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베트남 통일을 이룬 후부터 지금까지 종교는 법률의 영역이 아니라 정부에서 발표하는 각종 시행령에 의해 제어되는 영역이었다. 아주 최근까지도 그러했다. 2004년에 의회에서 “종교와 신앙에 관한 포고(Ordinace)”이라는 것을 통과시킨 것이 의회에서 종교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 첫 시작이다. 여기서 포고라는 것은 정부가 발표하는 시행령보다는 상위 개념이지만, 법률 보다는 낮은 개념이다. 이 포고가 발표되자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22호 칙령이라는 것이 나왔다. 그리고 이 것은 2013년 92호 칙령으로 대치된다.
정부시행령에서 의회 포고령으로, 그리고 이제 의회에서 본격적으로 종교에 관한 법률을 만들 정도로 베트남에서 종교 문제는 서서히 그 중요도와 비중을 높여 왔고, 그만큼 음지에서 양지로 나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변화가 가능했던 것은 미국의 압력이 일정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미국 중심의 WTO체제에 들어가고 싶어 했고, 미국은 이를 지렛대로 베트남에 대해 신앙의 자유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베트남이 WTO체제에 진입하고,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미국 국무부가 매년 작성하는 종교자유박해국가 명단에서 베트남을 제외시켜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성의 표시가 필요했다.
그래서 베트남 정부는 과거와 같이 탄압 일변도에서 벗어나 일부 교회와 교회그룹(교단)에 대해 등록을 허용하고 합법적인 지위를 부여하는 제한적인 개혁을 단행한 것이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그룹은 등록이 허용된 합법적 교회 뿐이다. 대다수의 비등록 교회들은 여전히 많은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새로 만들어지는 법률은 이러한 이원적 체제를 해소하는 방향의 내용을 담는대신 오히려 합법적 교회에 대한 자유는 좀더 넓게 보장하는 대신 비합법 지하교회에 대한 제한과 처벌규정은 더욱더 엄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때문에 정부쪽에서는 합법교회에 대한 활동공간을 넖혔다는 사실만을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비해, 대다수의 베트남의 기독교계와 종교계 인사들, 그리고 인권옹호운동가들은 새 종교법에 대해 혹평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정부가 어떻게 선전하고 홍보하든 기독교를 포함한 각 종교의 규모를 일정수준 이하로 억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지금이나 예전이가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 다만 그 방법이 좀더 세련되게 바뀌었을 뿐이다. 또한 지금까지의 소수종족의 교회에 대한 특별한 억압 의지 역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참고로 지금까지 정부는 중부 고원지대와 북서부 산악지대 소수종족 교회에 대해서는 특별한 탄압을 자행해 왔다.
게다가 대부분의 공산권, 혹은 구공산권 국가들이 잘 쓰는 수법을 베트남도 사용하려 하고 있다. 즉 새로운 종교법 제정을 구실로 이미 등록하여 합법적인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교회도 재등록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등록 과정에서 당국은 그 동안 맘에 들지 않는 행보를 해 왔던 합법교회의 재등록을 불허할 것이다. 또 새로 등록하려는 많은 가정교회의 등록이 이런 저런 이유로 거부될 것이다. 어쨌든 많은 합법교회들이 재등록에 실패하고, 여전히 많은 교회들은 불법인 상태를 면치 못하게 된다면 이들 교회는 예배의 불허나 와해, 관련자의 구속이나 구금, 공개적인 망신 주기, 예배 처소 폐쇄, 교회 지도자의 여행금지 등 갖은 방해를 받게 될 것이다.
2013년에 발표된 92호 칙령은 겉으로만 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등록요건이 명확하게 제시되어 있고, 등록요건만 충족시킨다면 등록을 통해 합법적 지위를 획득하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등록 요건과 절차라는 것이 비현실적이고 터무니 없다. 만일 92호 칙령이 발효된 시점인 2013년 1월 1일에 어떤 교회가 칙령이 요구하는 모든 등록요건을 충족시킨 상태에서 등록서류를 접수했다 치자. 그리고 실제로는 그럴 리가 거의 없지만, 행정당국이 일을 미루지 않고 처리하고 해당교회에 등록여부를 답신 했다고 치자. 그렇다해도 이 교회가 등록정차를 완전히 마치고, 합법적인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기는 놀랍게도 2036년 쯤이 될 것이다. 92호 칙령에 따르면 모든 등록절차를 밟아 가는데 최소한 23년이 걸리도록 셜계되어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92호 칙령 안에는 등록서류를 접수한 교회가 20년 간 별 문제 없이 운영되고 법률을 위반하지 않아야만 허가를 내주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20년 간이다. 20년 동안 이 교회의 법적 신분은 불법교회이다. 그러므로 그 존재 자체로도 불법을 저지른 꼴이기 때문에 20년간 불법을 저지르지 않고 존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등록서류를 접수하면서 과거 20년 동안 이미 별 문제 없이 교회가 존재해 왔고, 운영되어 왔음을 입증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실제로 9개 교단이 이런 식으로 등록에 성공했다. 이들 교단은 자신들이 베트남이 통일된 시점인 1975년보다 더 먼저 세워져 지금까지 유지되어 왔음을 입증한 케이스이다. 이렇게 법률적인 합법성을 획득했다고 해서 특별히 상황이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이들 교단 산하의 교단은 여전히 지역 행정공무원들로부터 여러 가지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특히 소수종족 사회에 세워져 있는 교회는 더 하다. 우선 교회의 여러 가지 잡다하고 세세한 상황까지 주기적으로 관청에 보고를 해야 하는 규정이 교회를 매우 귀찮고, 때로는 공포스럽게 만든다. 실제로 UN인권담당 특사는 베트남 교회에 대해 “법률적인 합법적 지위를 획득했다고 해서 신앙의 자유를 보장 받는 것은 전혀 아니다.”라고 보고하고 있다. 이미 등록에 성공한 교회와 교단의 관계자들도, 스스로 등록에 성공했다고 해서 비등록교회에 비해 어떤 유익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어쨌든 국내외로부터 비판에 직면한 베트남 정부는 최근 새로운 법안을 준비하고 있다. 이 법안에 대해 정부는 2013년에 개정된 헌법에 근거한 법률이라고 말하고 있다. 헌법은
1. 모든 국민은 신앙과 믿음의 자유가 있으며, 어떤 종교를 믿고 따를 자유와 어떤 종교도 믿지 않을 자유를 모두 가진다. 또 모든 종교는 법 앞에서 평등하다. 2. 국가는 국민의 신앙과 믿음의 자유를 보호해야 한다. 3. 누구도 신앙과 믿음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는 등의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라는 정도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헌법 14조에 가서는 이와는 상반된 조항이 눈에 띤다. 불가피한 경우 신앙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불가피한 경우에 한단다고 되어 있지만, 불가피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모호하기 때문에 자칫 정부나 행정 당국의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신앙의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조항을 보면 인권이나 시민의 권리도 국가의 방위, 안전, 사회 질서, 도덕, 사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제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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