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로그인
    • 제암리 교인들의 일제에 대항한 순교 - 23명

      날짜 : 2010. 03. 02  글쓴이 : Joosarang

      조회수 : 8030
      추천 : 0

      목록


      • ▲ (화성 제암리 교회)

        지난 1919년 4월 15일 오후 2시 경기 화성시 제암리. 일제의 방화 및 총살로 23명의 교인이 순교하고 마을전체가 불바다가 되는 비극이 일어났다.

        서울에서부터 일어난 3.1운동의 여파는 화성 일대까지 이어졌다. 3월 31일과 4월 5일 향남면, 장안면 일대에서 2번의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났고, 주도적 역할을 한 제암리교회 성도들을 상대로 일제의 보복이 감행됐다.

        일본군은 제암리교회 성도 21명을 예배당으로 모이게 한 후 교회 문에 못질을 하여 가두고 짚단을 쌓아 석유를 뿌려 불을 질렀다. 그리고 불타는 예배당에 집중사격을 가했다. 이날 교회에 감금됐던 남자 21명과 교회 밖 부녀자 2명 등 총 23명이 희생당했다.

        화성시 팔탄면 고주리에서는 일제가 김홍열 등 천도교 신자 6명을 칼로 난자한 후 시체를 나무더미 위에 올려놓고 불태웠다.

        예배당의 시신들은 캐나다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가 참사현장에서 4km 떨어진 향남년 도이리에 묻어 수습했다. 그 뒤 스코필드 박사는 처참한 상황을 '끌 수 없는 불꽃'이란 책을 펴서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렸다.

        참혹한 사건이 끝난 지 50년이 넘은 1970년, 제암리 교회와 유족회관은 일본 기독교인들이 사죄하는 마음으로 모은 성금 1000만엔을 받아 건립됐다. 1982년 9월 21일, 제암교회 강신범 목사는 유일한 목격자인 전동례 할머니의 증언을 통해 8일간 선열들의 유해를 발굴했다.

        강 목사는 "발굴을 시작한지 둘째 날에 형태가 완전한 유해 한 구와 불탄 교회건물의 숯, 못, 화염병으로 추정되는 유리병의 조각 등과 함께 출토했어요. 8일 동안 모든 유골을 발굴했지요"라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강 목사는 "유족 측과 관련단체와 함께 위령제를 거행하고 23인의 합장묘소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1995년 12월에는 조각가 박찬갑이 순국선열 23명의 넋을 기리고 자주독립 의지를 계승하기 위하여 23개의 상징조각물을 묘소 앞에 세웠다. 23개의 크고 작은  돌기둥은 그들이 순직할 당시 나이를 뜻한다. 높이 솟은 기둥은 무한한 발전과 자유를, 기둥의 원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한한 미래 세계를 상징한다.  

    신고하기

    • 추천 목록

    • 댓글(0)

    • 글을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