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2월 29일은 캐나다의’Anti-Bullying Day (반 왕따의 날)’ 입니다.
말하자면 학우들간의 약자를 괴롭히는 일을 금하자는 전국적 캠페인 같은거랄까요.
매년 2월 마지막 수요일로 지정된 이날은 일명 ‘Pink Shirt Day (핑크셔츠의 날)’ 라고도 하여,
이날엔 학교 학생들과 교직원, 스탶들이 핑크색 셔츠를 입고 등교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따돌림과 괴롭힘 없는 안전한 학습환경으로
가꿔나가자는게 그 취지로,
이날만큼은 친구들간에 서로 좋은말을 건네주고, 연극이나 컨서트 같은 행사를 통해
우정을 돈독하게 합니다.
이 핑크셔츠의 날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의 어느 고등학교 학생이 개학 첫 날
핑크 셔츠를 입고 온 이유로 급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Bullying 에 저항한다는상징으로 “Bullying Stops Here” 라던가, ‘Pink Shirt Day’ 같은 문구가
새긴 핑크셔츠를 모두 입기 시작했다 합니다.
불링(bullying)이란 말에 딱 맞아떨어지는 한국어를 찾지 못해 그냥 ‘왕따’라 붙였는데
사실 불링이란 따돌림이나 괴롭힘같은 약자를 못살게 하는 여러행동을 뜻하지요,
특히 아래 네 가지는 가장 흔한 형태의 불링이라고 합니다.
먼저,
욕하기, 빈정대기, 짖궂게 괴롭히기 등 말로 하는 불링이
있고,
다음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왕따’랄까요, 단체 따돌림, 책임전가 등, 사회적 불링이
있습니다.
때리고 밀치거나,
남의 물건 망가뜨리고 훔치는 등, 특히 남학생들에게서 볼수있는 육체적
불링도 있구요,
인터넷이나 텍스트 메시지를 사용하여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이버 불링이
또 있습니다. 이 사이버 불링은 우리 조블 블러거들도 잘 새겨두어야 할 사항이 아닐까.
불링은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을 수 있는 사소한 일이라며, 스스로를 방어하는 능력을
키워줄거...
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고 계신 분이 있습니다. 불링으로 인한 아래와 같은 장기적인 신체적,
정신적 피해를 안다면 생각은 달라지겠지요.
가족과 학교 활동에 참여치 않고 혼자 있고 싶어한다거나,
수줍음이 많아지고,
복통, 두통이 생기며, 공황발작이나
불면증,
또는 과다수면이나 불면증, 악몽등을 호소, 탈진상태에 쉽게 빠집니다.
처벌이나 저지당함 없이 교묘히 넘어간 폭력 아동은 성인이 되어서도
같은 행동으로 이어져,
더욱 큰 범죄 성향에 노출되게
됩니다.
불리를 당함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아동의 학습능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집중력을 저하시키고, 배운것에 대한 기억능력을 떨어뜨릴뿐
아니라,
심할 경우엔 자실이나 폭력적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자료에 의하면 약 열
명 중 한 명이 남을 불리한 경험이 있으며,
초등
4학년부터 6학년 아동중에 불리를 당해오고 있다는 숫자가 25%나 된다지요.
소아과 의학학술지에서 발간된
2004년 연구에 의하면,
11세부터 16세 사이의 캐네디언 아동이 일곱 명 중 한 명 꼴로 이 불리 피해를 입고 있는데,
운동장에서는 매
7분꼴로, 교실에서는 매 25분꼴로
발생한답니다.
대부분 불리행동은 급우가 중간에서 말리거나 이를 지지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 멈춥니다.
이 불리행동은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으로,
중학생에서 고등학생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가장 많이 생기는 편이라는데,
관리 감독 수위와 불리정도가 서로 상관관계가 있어,
감독 수위가 높아지면 이 불리 행위도 줄어줄고, 성인이 주위에 등장하면서 멈추게 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아이가 용기를 내어 따돌림 피해에 대한 불평까지는
피력한다 하더라도 그 상황을 혼자 헤쳐나가지는 못한다는 겁니다.
아이의 불평을 도움 호소로 간주하여 이에 적극 지원을 해줌은 물론이고,
더불어 문제해결 능력과 자신감을 길러주는 적극성 훈련을 제공해 준다면
그들이 힘든 상황을 대처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 의견.
두번째 잘못된 믿음은 바로 “맞은것 보다 더 쎄게 맞받아쳐야 한다”
는 겁니다.
아주 위험천만하고 잘못된 발상이지요. 남을 괴롭히는 학생들은 대체로 덩치가 크고 힘이
쎄기에
이런 맞받아 치는 방법은 아주 위험할 수 있을 뿐더러,
문제 해결엔 폭력이 제격이란 아이디어를
아이에게 심어주는 셈입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힘을 공격적으로 사용하는 걸 보면서 덩달아
남을 어떻게 괴롭히는지를 배우게 됩니다.
그 다음엔 “인격을 연마시킨다”
입니다.
인격 연마는 커녕, 반복적으로 괴롭힘을 당한 아이는 자존감이
낮아지고
남을 믿지 못하는 성적으로 성장합니다. 자아상에 손상을 입게 되는
거지요.
“Kids will be kids.” 애들이 다 그렇지요 뭐, 저 나이 때는 다 그래요.
역시 아주 소극적 발상입니다. 남을 괴롭힘은 선천적이 아닌 학습된 행위로서,
아이들이 티비나 영화, 또는 가정에서 본 공격적 행동을 곧잘 흉내냄은 다 아는 사실,
조사연구에 의하면 비디오 게임 95%가 공격적 행동을 유발하고,
12세에서 17세 사이의 남아 중 25%가 살인과 폭력이 난무하는 인터넷 웹사이트를
자주 방문하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교직에서 종종 부딪히고 엄격히 다루게 되는 이슈중 하나가 사실 이 불리와 징계문제입니다.
말씀드린대로 불리에는 ‘왕따’ 형태가 가장 많습니다. 제 오래전 포스트에도 한번 다룬적
있긴 하지만, 참 아이러니한 것이, 같은 동포끼리 오히려 이 현상이 많다는 것입니다.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느끼지는 못할망정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궁여지책의 학부모는 전학이라던가, 교육전문 정신과 상담을 받는가 하면
심할 경우엔 역이민까지 결심하게 됩니다.
왕따와는 다른 형태의 불리인 ‘몸싸움’은 특히 남학생들 사이에서 아주 드물지 않습니다.
순전히 사견입니다만, 우리 한국인의 고유 정서는 많은 부분이 ‘인내, 양보’ 와 연관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를 곧 ‘덕’으로 연결하는 경향이 있구요. 그런데 그 고유의 정서가 타문화와 융합될 때에는
때에 따라서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게 문제지요.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 학생들은 부모님으로부터 ‘그냥 네가 참아라’ 는 말을 많이 들으며 성장합니다.
그렇기에 피해 학생은 불리를 당하더라도 대개의 경우 그냥 무반응 무대응으로 참고 넘어가지요.
그런데 문제는, 피해 학생 마음속에서 그 화가 삮여지지 않고 속으로 쌓여 어느 순간
예기치 않은 상황에서 봇물처럼 과다하게 ‘엉뚱한 형태’로 터진다는 겁니다.
그의 그간 속사정을 알리 없는 주의 사람들은 그의 뜬금없는 과격 행동에 그저 뜨아해 질 뿐이구요.
하지만 누가 먼저 시작 하고 원인 제공 했던, 결과에 대한 책임은 순전히 그 당사자에게 있습니다.
네가 먼저 밀쳐서 나도 맞대응을 한 것 뿐, 혹은 몇년간 참았다 도저히 못참겠어 처음으로
대응을 했다...식의 말은 통하지 않습니다. 폭력 맞대응은 어떤 경우에도 그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곳 문화와 교육시스템에 처음 노출되는 신입생과 그 학부모들에게,
학교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고, 그것이 학습이나 학교 생활에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것이라면
절대로 속으로 참거나 삭이지도, 자신의 손으로 직접 해결하려 하지도 말고,
모두 교사나 카운슬러에게 알려, 문제 학생에 대한 대응, 처벌은 학교 행정부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지시켜 드리곤 합니다.
“Sticks and stones may break my bones, but words will never hurt me.
“
(막대기와 돌맹이는 뼈를 다치게 할 수 있지만,
말로 하는 욕설은 절대 해를 입히지 않는다)
란 속담이 있습니다, 여기에 숨은 sarcasm이 있지 않은 다음에야 요즘같은 소셜네트워킹
시대엔 맞는 말이 아니란 생각이 들지요?
Anti-Bullying.
한 문화를 바꾸는 데는 한 나라 전체가 노력해야 한다는 당연한 말처럼,
부모와 교사, 학생들 모두가 함께 힘을 합쳐 노력해야 할 일임은 분명합니다.
출처 - 조선 일보,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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